<2007-04-15 격주간 제650호>
<이규섭의 생태기행>서식환경 훼손 ‘물 반 재첩 반’ 옛 말

섬진강 재첩

섬진강은 진양조 가락처럼 유장하게 흐른다. 강물이 굽이를 틀 때마다 정갈한 모래톱 속살을 드러낸다. 전라북도 진안에서 발원하여 3개 도와 12개 군을 넘나들며 남도 500리를 휘돌아 전남 광양에서 바다로 흘러든다. 섬진강변을 울긋불긋 물들였던 산수유, 매화, 벚꽃도 꽃비가 되어 떨어지고 새순이 싱그럽게 돋는다.

<그림 같은 섬진강이 골재채취 등으로 생태계가 훼손되고 있다.>
19번 국도를 따라 하동대교 앞을 지나면 강물이 은빛 물비늘을 수놓으며 반짝이고 그 중심에 재첩이 있다. 남해에서 밀려온 바닷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재첩잡이가 시작된다. 강마을 사람들은 빨간 고무대야를 밀며 강으로 들어간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강 한가운데로 삼삼오오 몰려들어 거랭이로 강바닥을 훑어 재첩을 잡아 올린다. 거랭이는 기다란 대나무에 모래가 빠져나갈 수 있게 촘촘히 구멍을 낸 쇠갈퀴다.
건져 올린 재첩은 소쿠리에 모아 까불러서 새끼재첩(갱조개)과 실한 놈을 선별한다. 새끼재첩은 부산의 양식장으로 보내 1년 정도 더 자라면 일본으로 수출한다. 수심이 깊은 섬진대교 남쪽에는 나룻배를 이용하여 재첩을 긁어 올린다. 4월부터 시작되는 재첩 채취는 7, 8월에 절정을 이뤘다가 10월초면 끝난다.

하동재첩은 매끈하면서도 푸르스름한 빛이 나고 속살이 부드럽다. 재첩은 바다조개 보다 칼로리, 단백질, 탄수화물, 칼슘, 비타민 등이 두 배 이상 함유된 웰빙식품으로 재첩국의 담백하고 시원한 맛은 일품이다.
섬진강에 품질 좋은 재첩이 서식하는 것은 바닷물과 강물이 어우러지고 모래로 형성된 넓은 갯벌에 수질이 깨끗하여 서식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1960~70년대는 낙동강 하구언이 재첩서식 1번지었으나 개발과 오염으로 재첩이 사라졌다. 부산 자갈치 아지매들이 골목을 누비며 “재첩국 사이소”를 외치던 것도 추억 속의 풍경이 되었다. 그 후 섬진강 하동포구가 재첩 1번지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거랭이로 훑어 재첩을 잡아 올리고 있다. 원 안은 재첩>
국내 재첩 생산의 70%를 차지하던 하동포구 재첩도 위기에 처했다. 하동 수협관계자는 “7~8년 전 만해도 연간 600~700톤가량 생산됐지만 지금은 300~400톤 수준으로 줄어 ‘물 반 재첩 반’이란 말도 이젠 옛말이 됐다”고 말한다.

하동군에서는 4년 전부터 멸종 위기에 처한 섬진강 재첩 살리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재첩잡이 어업인들에게 섬진강 재첩보존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형망어선까지 동원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종패까지 싹쓸이하는 남획을 막으려 안간힘 쓰고 있다.
또 다른 원인은 섬진강 수량 감소와 골재채취다. 섬진강댐, 하동댐에서 물을 전용하여 수량이 준데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선 광양제철소가 섬진강 모래로 메워지는 등 골재채취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낮아진 강바닥으로 바닷물이 밀고 들어오면서 생태계가 파괴됐다. 재첩이 해마다 줄어드는 것은 물론 민물장어, 잉어 등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어업인들의 소득도 줄고 식도락가들이 즐겨 찾는 하동 재첩국집들이 점차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섬진강 재첩국이 중국산에 점령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번 훼손된 생태계를 원상으로 회복하기란 불가능하다. 더 이상 재첩이 줄지 않도록 서식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규섭 /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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