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5 격주간 제807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멀리 가고 싶다면…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라
切問而近思(절문이근사)
- 《논어(論語)》 중에서"


‘근사록(近思錄)’은 송나라의 학자 주희와 여조겸이 엮은 책이다.
책 제목인 ‘근사(近思)’는 가까운 것에서부터 생각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멀리 있는 것까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넓게 배우려고 노력하고 의지를 돈독하게 하라.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라. 그 과정 속에 인(仁)이 있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가장 가까운 부모와 자식부터 시작된다. 그렇기에 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그 어떠한 사람과도 원만하게 지낼 수 없다고 강조한다. 효도가 중요한 이유다. 효도만이 최고라는 뜻이 아니라 효도부터 시작해야 인류애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을 공부하면 낮은 곳에서 시작해서 높은 곳에 오르고,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서 먼 곳에 이르는 길을 알게 될 것이다. 낮고 가까운 곳을 무시하고 무작정 높고 먼 곳으로 달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조겸이 쓴 ‘근사록(近思錄)’ 편집 후기의 내용이다.
실천은 없이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 깊은 내용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태도, 실생활과 거리가 먼 뜬구름을 잡는 논리 등을 가리켜 흔히 ‘공자 왈 맹자 왈’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말은 실제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 공자와 맹자는 실천을 강조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매우 실질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한 번도 뜬구름을 잡는 듯 말한 적이 없다. 누군가 공자에게 인(仁)이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해준다. “모든 사람을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대하는 것이다.” 하늘이 어쩌고 마음이 어쩌고 하며 말하지 않는다. 공자의 언어는 항상 현실을 떠나지 않았다.
맹자는 어떠한가. 그는 아무리 어렵고 심오한 이론에 대해 토론을 벌이더라도 항상 생활 속에서 적절한 비유를 찾아내 토론을 승리로 이끌곤 했다. 흉년이 든 때에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아갔다가 많은 병사들을 굶어죽게 한 정치인이 ‘그것은 흉년 때문이지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변명하자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소와 양을 대신 길러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소와 양을 대신 길러주기로 약속했다면 먼저 좋은 목초지를 구해서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좋은 목초지를 구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의 소와 양을 황무지로 끌고 왔다고 칩시다. 그 황무지에 소와 양을 그대로 내버려두어 굶어죽게 하는 게 마땅한 일입니까, 아니면 소와 양을 주인에게 도로 돌려주는 게 마땅한 일입니까?”
공자와 맹자는 실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사람들이었다. 결코 실생활을 외면하지 않았다. 공자와 맹자는 실천을 강조한 사람이었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중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부모와 자식, 친구, 선후배…. 부모를 닮은 자식, 친구를 닮아가는 친구, 선후배를 비롯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는 생각이 그렇다. 굳이 동시대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먼저 바르게 되어야 세상 전체가 바르게 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를 먼저 바르게 하여, 그 바른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주라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것들과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 속에 내가 존재한다. 해와 달, 나무와 산, 바다와 강, 바람과 비…. 모든 것과 교감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모든 관계는 가까운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주희가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라’며 근사(近思)를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멀리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부터 거쳐야 한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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