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5 격주간 제807호>
[착한 나들이] 죽음이 가르쳐 준 ‘만세기도’
장미도 일 년에 한 번 배달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편지다
며칠 전 편지를 받았다. 우편함에서 꺼내는 순간 나는 놀랐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오래전의 일이 떠올랐다. 회사 연수 때였다.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이라는 교육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각자 가족에게 편지를 쓴 후 관속에 들어가 죽음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조명을 낮추고 음악이 흐르자 분위기는 일시에 숙연해졌다. 편지를 쓰며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전쟁과 재난, 질병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도 나와는 상관없었던 죽음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남은 건 10분!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왜 행복하지 못한가. 삶 속에선 모두가 남의 탓이었지만 죽음 앞에선 모두가 나의 탓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남편을 미워했다. 늘 나쁜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너무나 오랫동안 습관처럼 해온 것이다. 이제 시간이 없었다. 나는 편지지에 한 줄을 급히 썼다. ‘금래야 웃어!’
삶의 마지막에 빛처럼 떠오른 건 웃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이 가르쳐 준 건 매순간 웃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나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관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침묵을 맛보았다.
그날 이후 나는 날마다 아침이면 웃으며 만세를 불렀다. 일명 ‘만세기도’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배꼽이 보이도록 두 팔을 높이 쳐들고 힘껏 만세를 부르는 것. 가족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만세!”를 외친 다음, 오늘 병원에서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만세!” 또는 지진이 난 네팔사람들을 위해 “만세!” 메르스여 물러가라 “만세!” 남북통일을 위해 “만세! 만세!” 이런 식으로 한 30번 정도 하다 보면 운동으로도 그만이다.
집이 서쪽이라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운 이유로 친구 대신 만세기도를 한 달 동안 해준 적도 있다. 기도 덕분인지 그 친구의 90세 노모의 꼬리뼈가 빠르게 붙었다고 했다. 그래서 밥까지 얻어먹었다. 밥이 생기는 만세기도. 해보면 처음엔 쑥스러워도 어떤 기도보다 자유롭고 재미있다.
‘금래야 웃어!’라는 편지를 받은 후 나는 계속 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우리나라에는 느림보 우체통이 있다. 편지를 부치면 일 년 후에 도착한다. 나는 실비 내리는 날 물어물어 조계사 앞에 있는 느림보 우체통을 찾아 갔다. 우체통이 사라지고 손 글씨 편지가 유물처럼 여겨지는 요즈음, 느림보 우체통은 그리운 이가 부활해온 듯 반가웠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돌아서니 일 년을 저금한 듯 뿌듯했다. 나는 다시 내년이면 편지를 받게 될 것이다. 편지는 쌓여 갈 것이고 나는 언제쯤 마지막 편지를 쓰게 될까?
돌아오는 길에 반짝 해가 났다. 길가에 줄장미는 흩어져 먼지가 되기 전, 빗방울을 털어 내고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장미도 일 년에 한 번 배달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편지다. 해마다 하느님이 꽃처럼 살라고 보내주는 귀한 편지를 사람들은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보며 그냥 지나간다.
이제 비가 개었으니 벌이 날아오리라. 사람들은 읽지 않아도 벌들은 한 송이씩 꼼꼼히 편지를 읽으리라. 자꾸 읽으면 양식이 되는 꿀 편지를!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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