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01 격주간 제806호>
[이 한 권의 책] 아홉살 인생

가장 불쌍한 사람은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종 무 지도교사 (울산 홍명고등학교4-H회)

아홉(9, 九)이라는 숫자는 참 묘하다. ‘구미호’나 한 많은 사연이 담긴 아흔아홉 고개처럼 ‘9’는 미완결성을 갖기도 한다. 10진법을 사용하는 서양 각국의 경우 ‘9’라는 숫자는 일을 이루기에 부족하거나 사건을 앞둔 긴장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까 말까를 스스로 고민하고 태어나지 않는다.(7쪽) 대체로 다섯 살 이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서서히 세상의 희로애락을 배우기 시작한다. ‘미운 아홉 살’이라는 말은 자기결정 능력이 생겼다는 말과도 같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 시기를 ‘잠복기’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모방하려는 모습과 자신과 엄마, 아빠를 동일시하려는 모습이 강해지는 시기다. 이로 인해 아이들에게 초자아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되고, 대표적인 표출 행동인 공격적인 본능, 성적 본능, 리비도의 힘이 잠복되어 있어 잠복기라고 한다. 또한 에릭슨은 이 시기를 ‘근면성 대 열등감’으로 규정하고 프로이트와 달리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시기로 봤다. 학교 교육이 시작되고 읽기, 쓰기, 셈하기 등 중요한 인지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열등감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시기다. 신기종이라는 아이(41쪽)의 행동에서, 검은 제비의 취직에서(174쪽), 우림이의 욕망(201쪽)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고시에 실패하고 연애에서도 실패한 골방철학자의 말에서(209쪽) 때로는 근면함이 때로는 열등감이 팽배해져 극단의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 살은 세상을 느낄 만한 나이라는(12쪽) 서양 작가의 말이 인용된 흔적들이리라.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편의 소설이 떠올랐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성장 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과 청소년시기에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들어있다. 성장소설이긴 하지만 청소년 시기에 읽기에는 부담이 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그림이 있다는 점에서 조금 독특하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와 쌩떽지페리의 ‘어린왕자’ 등이 떠올랐다. 아라비아 숫자 ‘구’의 거대한 언덕 위에 닥지닥지 붙은 달동네의 풍경 위로 아홉 살 인생이 구름을 타고 있는 모습(9쪽), 산꼭대기 우리 집과 숲이 있는 그림, 하트 모양이 보이는 부처님 손 같은 오른손 검지 위 ‘아이’의 모습, 외팔이 하상사와 기종이 누나, 기종이 그리고 새, 목마를 한 소년과 보는 소녀, 열매가 있는 나무 계단을 오르는 소년, 꽃이 핀 동심원을 걸어 십오 세가 된 소년 등 책 곳곳에는 그림이 24장이나 있다. 그림만 봐도 흥미가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더 읽기가 쉽다.
누구나 아홉 살은 겪었다. 에릭슨의 말처럼 대부분 근면하겠지만 반대로 열등감이 생기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나의 성격이 어쩌면 아홉 살 인생이 결정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간혹 있었다. 한 자리 나이에서 두 자리 나이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느낀 인생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떤 슬픔과 고통도 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회피하려 들 때 도리어 더욱 커진다는 사실(253쪽)이라거나 험상궂은 세상의 낭만이란, 허망하게 깨지기 쉬운 마른 낙엽 같은 것이라거나 사람은 서로 만나고 힘을 보태고 그리고 강해진다(223쪽)거나 어차피 죽기 마련이라면 사는 동안만큼은 사람답게 사는 편이 한결 낫다(215쪽)거나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욕망은 우리 마음속에 고이고 썩고 응어리지고 말라비틀어져 마침내는 오만과 착각과 몽상과 허영과 냉소와 슬픔과 절망과 우울과 우월감과 열등감이 되어 버린다(213쪽)거나 너그러움이야말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라는 사실(196쪽) 등 아홉 살 인생치고는 서른 살 인생을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연필로 줄을 그으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이 나온 지가 한참 됐다. 주인공 백여민은 1991년 아홉 살이었는데 지금은 서른을 넘긴 나이가 됐을 것이다. 저자 위기철은 후편을 내지 않고 있다. 곰탕처럼 푹 고아야 국물 맛이 우러나오는 것으로 비유했다. ‘아홉 살 인생’은 지금 읽으면 30대의 인생이 되는 책이다.
 〈위기철 지음 / 청년사 펴냄 /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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