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맞는 사람끼리는 한패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물리침”
같은 편과는 당을 만들고 다른 편은 공격한다는 뜻으로,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같은 무리끼리는 서로 돕고 다른 무리는 무조건 배척하는 것을 이른다.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이룩한 이래 중국의 권력은 오직 황제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자연히 황제를 둘러싼 친위 집단이 권력을 농단하게 되었는데, 그 중심을 이룬 것이 환관과 외척 세력이었다. 또 한(漢)나라 때에는 유교를 국교로 하여 유학을 공부한 선비 집단이 성장하였다. 그런데 왕망(王莽)이 제위를 찬탈하자 선비들은 초야로 피해 청의(淸議)를 일삼고, 자연스럽게 명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는 무리들이 모였다. 이를 당인(黨人)이라 한다.
후한(後漢) 때 화제(和帝) 이후 역대 황제가 모두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그래서 황태후가 임금을 대신하여 나라를 통치했는데, 이 과정에서 황태후의 친인척들인 외척들이 실권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어린 황제들이 성장함에 따라 자신의 친위세력을 키워 나가기 위해선 황태후의 외척을 제거해야 했다. 이때 이들을 제거해 나가는 데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세력이 바로 환관이었다. 환관들은 신분 상승의 욕구 때문에 스스로 거세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집단의 결속력이 유달리 강하고, 사회적 책임이나 정치적 경륜보다는 자신들의 이해에 민감하였다. 따라서 이들이 권력을 쥐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기 마련이었다.
유교적 교양을 쌓은 예비 관료 집단인 선비들이 환관의 농단으로 국정이 문란하고 풍속이 타락해 가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 리 없었다. 이들도 명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방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비 집단과 외척, 환관 세력이 서로 물고 물리는 정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집단을 무조건 배척하고 비방하는 풍토가 싹트게 되었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당동벌이’이다.
좁게는 당고(黨錮)의 옥(獄) 이후 이응(李膺)을 중심으로 한 당인들이 유교적 지식 계급 이외의 세력을 적대시하던 사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전한은 외척이 망쳤고, 후한은 환관이 망쳤다고 한다. 후한 말에 이르러 환관들은 외척과 선비 집단을 철저히 탄압하고, 그 결과로 지식인 관료 집단인 선비 집단이 황실을 버림으로써 후한이 자멸하게 되었다.
<무리 당(黨) / 한가지 동(同) / 칠 벌(伐) / 다를 이(異)>
“뜻이 맞는 사람끼리는 한패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물리침”
같은 편과는 당을 만들고 다른 편은 공격한다는 뜻으로,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같은 무리끼리는 서로 돕고 다른 무리는 무조건 배척하는 것을 이른다.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이룩한 이래 중국의 권력은 오직 황제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자연히 황제를 둘러싼 친위 집단이 권력을 농단하게 되었는데, 그 중심을 이룬 것이 환관과 외척 세력이었다. 또 한(漢)나라 때에는 유교를 국교로 하여 유학을 공부한 선비 집단이 성장하였다. 그런데 왕망(王莽)이 제위를 찬탈하자 선비들은 초야로 피해 청의(淸議)를 일삼고, 자연스럽게 명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는 무리들이 모였다. 이를 당인(黨人)이라 한다.
후한(後漢) 때 화제(和帝) 이후 역대 황제가 모두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그래서 황태후가 임금을 대신하여 나라를 통치했는데, 이 과정에서 황태후의 친인척들인 외척들이 실권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어린 황제들이 성장함에 따라 자신의 친위세력을 키워 나가기 위해선 황태후의 외척을 제거해야 했다. 이때 이들을 제거해 나가는 데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세력이 바로 환관이었다. 환관들은 신분 상승의 욕구 때문에 스스로 거세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집단의 결속력이 유달리 강하고, 사회적 책임이나 정치적 경륜보다는 자신들의 이해에 민감하였다. 따라서 이들이 권력을 쥐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기 마련이었다.
유교적 교양을 쌓은 예비 관료 집단인 선비들이 환관의 농단으로 국정이 문란하고 풍속이 타락해 가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 리 없었다. 이들도 명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방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비 집단과 외척, 환관 세력이 서로 물고 물리는 정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집단을 무조건 배척하고 비방하는 풍토가 싹트게 되었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당동벌이’이다.
좁게는 당고(黨錮)의 옥(獄) 이후 이응(李膺)을 중심으로 한 당인들이 유교적 지식 계급 이외의 세력을 적대시하던 사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전한은 외척이 망쳤고, 후한은 환관이 망쳤다고 한다. 후한 말에 이르러 환관들은 외척과 선비 집단을 철저히 탄압하고, 그 결과로 지식인 관료 집단인 선비 집단이 황실을 버림으로써 후한이 자멸하게 되었다.
<무리 당(黨) / 한가지 동(同) / 칠 벌(伐) / 다를 이(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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