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5 격주간 제805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만찬
토스트는 꿈에 그리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돛단배 같았다.

생각엔 길이가 있다.
생각의 길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 것은 이런 연유다. 매달 한 번씩 충무로 커피숍에서 만나는 오래된 동아리 모임이 있는데. 마침 연휴라 커피숍이 문을 닫는다고 총무인 내게 연락이 왔다. 그래서 우리는 화창한 봄날에 소풍 가는 기분으로 남산 한옥마을에 가기로 했다.
그 동네 사는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다. 남산 한옥마을로 가려면 지하철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느냐고.
그 언니와는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어쩌다 문자나 하고 지냈었다. 그런데도 언니는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며 무슨 모임이냐 몇 명이냐를 물어 보더니 토요일엔 자리가 없을 테니 자기가 먼저 가서 자리라도 잡아 놓겠다고 했다. 나는 미안했지만 교수님도 모시고 가는 길이라 걱정이 되어 감사하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언니는 먼저 와 숲속 제일 좋은 정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섯 명이 앉을 수 있도록 신문지를 깔아놓고 신문 위에는 직접 만든 딸기잼과 치즈를 넣은 토스트를 하나씩 올려놓고 종이컵에 우유도 한 잔씩 따라놓았다. 게다가 따끈한 커피까지 끓여 온 것이다. 언니는 우리가 도착하자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나는 내심 당황했다. 나는 이런 친절을 받을 만큼 언니에게 잘해 준 게 기억나지 않았다. 같이 온 일행도 놀란 모양이었다. 자리 잡아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저런 분이 있어 세상이 따뜻하다고 다들 맛나게 토스트를 먹었다.
그때 문득 내 생각의 길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자리를 잡아주기는커녕 지하철 출구를 알려주는 것에서 끝났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언니의 생각은 나보다 몇 배나 길었다. 지하철에서 정자로, 정자에서 신문지로, 신문지에서 토스트로, 토스트에서 우유와 커피로 이어졌으니.
나에겐 작은 소원이 하나 있었다. 우리 집 앞에는 서울숲이 있고 서울숲에는 의자와 탁자가 많이 있다. 나는 아침 산책길에 그곳이 텅 비어있는 게 너무나 아까웠다. 운동장 같은 넓은 정원과 막 태어난 연한 햇살과 바람 속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면 억만장자가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꿈은 이사 온 지 5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심드렁하게 ‘집에서 먹지 별생각을 다 한다.’고 했고, 아이들은 잠에 빠져 먼 이야기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랑 서울숲에서 만나 그 탁자를 보며 나의 꿈 이야길 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시간이 흐른 어느 토요일 아침 그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침 8시인데 서울숲으로 오라는 것이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그곳으로 갔다. 그곳엔 친구가 토스트를 접시에 담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토스트는 꿈에 그리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돛단배 같았다. 내 접시엔 노란 꽃까지 놓아두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토스트를 먹었다. 잔디밭에선 새가 날고 햇볕에선 꽃향기가 났다. 나는 왜 그녀와 함께 이런 시간을 만들 생각을 못한 것일까. 그것은 내 시간을 포기하고 노력을 들이는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토스트를 만들며  기뻤다는 그녀. 그녀의 길고 따뜻한 생각을 따라 서울숲까지 온 토스트는 내가 세상에서 맛본 가장 행복한 만찬이었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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