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여, 놀면 불안해지는 병에서 벗어나라!
이 종 무 지도교사 (울산 홍명고등학교4-H회)
백석(시인·1912~1996)은 ‘여우난골족’이라는 시에서 ‘외양간 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 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 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 싸움 자리 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고 했다.
친족과의 유대관계와 각종 놀이 등 전통적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서 건강하고 풍요로운 공동체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를 이룩한 세대가 어쩌면 이런 놀이를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놀 시간이 없다고 한다. 학원, 야간자율학습 등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학원에 가야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하니, 자연을 벗 삼아 자연스럽게 또래 문화가 형성되기란 정말 어려운 것인지 한국 경제를 이룩한 세대와 함께 고민해야 할 점이기도 하다.
김정운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제목부터 남들의 이목을 끄는 발칙한 문화심리학자로 유명하다. 프롤로그에 보면 심리학적으로 창의력과 재미는 동의어라고 한다. 성실하기만 한 사람은 21세기에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재미를 되찾아야 한다. 재미와 행복이라는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법을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고 했다. 즉, 21세기를 살아갈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노는 것을 학습의 기회로 삼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요즘의 학생들은 공부와 놀이를 별도로 생각한다. ‘공부’하면 재미없고 따분하다하고, ‘놀이’하면 컴퓨터 게임이 전부인 세상이 되었다.
모 방송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이라는 것이 있다. 진행자가 자랑스럽게 여름방학 중 3박4일 캠핑 갔다가 놀고 다시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외국 참가자들이 깜짝 놀라며, 그게 뭐 노는 것이냐, 우리는 적어도 30일은 간다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장면이 떠올랐다. 공부와 노는 것을 구분하는 우리와 달리 노는 것이 공부의 일상인 외국 참가자들과 비교가 됐다.
저자는 놀이의 특징을 비현실적이고, 내적 동기에서 획득하는 것이고, 과정을 즐기는 것이고, 스스로 선택해야 하고 그리고 즐거워야 한다며 다섯 가지로 규정했다. 즉, 놀이는 일상의 경험과 다르며 놀이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기도 하고, 어떠한 외적 보상도 없이 자기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놀기도 하고, 목표지향적인 행동이 아니라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어야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으며, 억지로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고 선택의 기회를 많이 갖는 지각된 자유감을 얼마나 느꼈는지가 더 중요하며, 결정적으로 아무리 자신이 선택해도 즐겁지 않으면 놀이가 아니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래서 놀이는 창의성과 동의어라고 했다. 잘 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 읽는다고 한다. 그리고 가상 상황에 익숙하다고 한다. 놀이는 항상 가상현실에 대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잘 노는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는 데도 능숙한데 자기 객관화 능력은 또 하나의 가상 상황에 자신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고 해서 무작정 대책 없이 노는 것은 아닐 것이다. 노는 것도 나름 법칙이 있다. 다섯 가지 놀이의 특징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래서 놀이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이다.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에서처럼 친족들이 모여 놀면서 형제애를 키우고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배운다. 놀이와 공부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노는 것이 공부고, 공부하는 것이 곧 놀이라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교에서는 공부에만 집중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의가 산만한 사람이 오히려 창의력은 더 높을 수 있다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 결과를 참고할 만하다. 공부와 놀이를 어떻게 접목하느냐, 혹은 산만한 아이를 어떻게 창의적인 교육의 장으로 이끌어 내느냐가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 1만5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