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118호인 진주성은 삼국시대 ‘거열성(居列城)’, 고려시대 ‘촉석성(矗石城)’으로 불렀던 것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진주성으로 개칭됐다. 진주성은 본래 토성이었는데 고려 말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석성(石城)으로 고쳐 쌓았다.
이처럼 고려 말에 왜구방어의 보루로 고쳐 쌓은 이 성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는 관문이 되기도 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제1차 진주성싸움을 꼽는 것은 3800여명의 군사로 10배에 가까운 왜적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이 성을 지킴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싸움에는 민·관·군 7만여명이 왜군 12만여명을 맞아 11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목숨을 잃었고, 이 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곳이기도 하다.
성내는 촉석루, 김시민 전성각적비, 의기사, 서장대, 북장대, 창열사, 국립진주박물관, 호국사,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참고 : 대한민국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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