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15 격주간 제803호>
[이 달의 착한나들이] 올림픽 공원에서 만난 두 남자
나는 갈라진 틈에 손을 넣어보았다. 그늘의 감각은 서늘하고 눅눅했다.

강물 같은 노래가 있다. 긴 시간 흘러도 가슴 가득 출렁이는 노래. 며칠 전 우연히 1988년 서울 올림픽 주제가를 들었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 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세계인이 하나 되어 불렀던 노래. 다시 들어도 코끝이 찡했다. 감동 속엔 슬픔이 있다. 가난과 전쟁, 굴욕적인 식민지 시대의 벽을 부단히 넘어왔기에 감동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그 여운을 안고 볕 좋은 토요일에 올림픽 공원으로 갔다. 전 세계 10만의 인파가 모여 잔치를 벌였던 역사적인 현장엔 가족이나 연인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연을 날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올림픽 공원’은 세계 5대 조각 공원 중 하나다. 성화가 타오르는 ‘평화의 문’을 지나 ‘소마미술관’을 지나면 서울올림픽 당시 세계 유명한 조각가가 만든 조각들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자연 경관을 따라 9경으로 나누어진다.
그 중에 가장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은 건 4경 조각상이다. 머리도 눈도 없이 몸뚱어리만 남은 두 남자. 서로에게 몸을 한껏 기울이느라 몸뚱어리가 갈라져 있다. 더 많이 기울이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 공감하고 하나가 된다는 건 몸뚱어리가 찢어지는 고통이란 뜻일까? 나는 갈라진 틈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그늘의 감각은 서늘하고 눅눅했다. 누구에게나 이런 틈이 있을 것이다. 그 속엔 가랑잎 하나가 박혀있었다. 왠지 그것의 녹슨 빛깔이, 오래 말라비틀어진 슬픔이 찡하게 나를 자극했다. 그리고 이내 녹슨 철조망이 떠올랐다. 분단된 지 67년이 흘렀다. 전 세계인이 몰려와 손에 손을 잡고 이념의 벽, 인종의 벽, 빈부의 벽을 넘어 하나가 되자고 노래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삼팔선으로 깊은 골이 패인 채다. 두 남자의 조각상은 분단된 조국이었으며 서로 다른 이념 속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형제였다.
이 작품은 알제리의 세계적인 조각가 ‘아마라 모한’의 작품으로 제목은 ‘대화’다. 두 남자는 쌍둥이로 매일 싸움만 하여 대화가 단절되자 신이 눈을 빼앗아 서로 볼 수 없게 한 뒤 평생 옆에서 대화를 하도록 했다고 한다. 눈도 귀도 없이 굳게 입을 다문 이들은 무엇으로 대화를 해야 할까?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건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러나 때론 인간처럼 가깝고도 머나먼 장벽이 또 있을까?
그곳에서 오래 머물다 발걸음을 옮겼다. ‘몽촌역사관’ 쪽으로 가는데 유치원생처럼 보이는 남자 아이가 상반신 조각상을 보며 말했다. “저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야!” 왜냐고 물었더니 “북한 사람이잖아!” 라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그래서 읽어보니 그는 당시 우리나라 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다.
우리는 저마다 생각의 감옥에 갇혀 산다.‘빠삐용’이란 영화가 있다. 빠삐용은 수십 미터 벼랑 아래로 몸을 던져 야자수 열매 자루를 타고 악마의 섬을 탈출한다. 그는 감옥에서 늙은 노인이지만 어떤 감옥의 벽도 그를 끝까지 가두어둘 수는 없었다. 자유를 찾는다는 건 자신을 찾는 일이다. 나는 지금 어떤 감옥에 갇혀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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