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백마강변의 부소산 서쪽에 위치한 ‘낙화암(洛花岩)’은 백제 3000명의 궁녀가 백제 멸망 당시 절개를 지키기 위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약 1400여년 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수륙양면으로 백제 침공을 감행할 때, 의자왕과 태자 효는 웅진성(공주성)으로 피하고 둘째 왕자 태가 남아 사비성을 지켰다. 적군이 성을 포위하자 궁녀들은 굴욕을 면치 못할 것을 알고 치마를 뒤집어쓴 뒤 한 사람씩 강물로 뛰어들었다.
궁녀의 숫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데, 사실상 낙화암의 이야기를 전하는 ‘삼국유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주행기’ 등에도 ‘3000’이라는 숫자는 나오지 않는다.
‘삼천궁녀’라는 표현은 15세기 이후 문인들의 시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문학적 과장과 패망의 임금인 의자왕에 대한 비판 의식이 합해져서 ‘삼천궁녀’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낙화암 꼭대기에는 ‘백화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세운 것이다. 〈참고: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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