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01 격주간 제802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부자가 되는 법
" 올바름을 따지지 않고 왜 이익만 따지려 하십니까?
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己矣(하필왈이 역유인의이기의)
- 《맹자(孟子)》 중에서 "


송나라의 학자 정호는 공자와 맹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자는 툭 트여 막힘이 없는 사람이고, 맹자는 탁월한 이론가이자 웅변가였다(孔子是明快人, 孟子雄辯).”
맹자는 해박한 지식으로 확실하고도 명징한 사례를 들어 상대를 설복시키곤 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익을 말하기 전에 올바름을 말했기에 가능했다. 맹자는 “올바른 것은 과정 속에 이루어진다. 과정을 거친 후에 얻어지는 것은 사람의 능력 밖의 일이다. 과정을 거쳐 무엇을 얻고, 잃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그리고 얻고, 잃는 것은 하늘에 달린 것이지 사람에게 달린 게 아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맹자는 올바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단 하나의 조건으로 구분했다. 올바른 것을 따르느냐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따르느냐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수준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사회 지도층에게 강하게 요구했고 일반인에게는 최소한의 것만을 요구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올바르지 않은 길을 가게 되었다면 최소한 부끄러움이라도 느끼라고. 바르지 않은 길을 가면서도 당당하다는 것은 진정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짐승과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맹자가 양(梁)나라 혜왕(惠王)을 만났다. 혜왕이 맹자에게 “이렇게 학문이 높은 분이 찾아오셨으니 이제 우리나라에 큰 이익이 생기겠군요!”라며 인사말을 건넸다. 당시 맹자의 나이는 50세, 혜왕의 나이는 81세였다. 게다가 혜왕은 권력을 지닌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혜왕의 인사에 대해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올바름을 따지지 않고 왜 이익만 따지려 하십니까(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己矣)? 만약 왕께서 이익만을 생각하신다면 신하들도 따라서 어떻게 하면 내 집에 이익이 될까를 생각할 것이며, 백성들은 또 그들대로 어떻게 하면 내 한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서로의 이익만을 취하려들면 결국 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왕의 면전에서 ‘당신의 나라는 위태롭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맹자였다.
여기서 질문 하나. 맹자의 말처럼 이익을 생각하는 것은 정말 나쁜 것일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경제생활은 모두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적자를 내면 망한다. 개인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다. 국가나 공공기관은 어떠한가. 외환위기를 머리에 떠올려보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을 관리하는 기관은 어떠한가. 적자가 누적되면 나중에 깡통을 차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익을 멀리하라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익과 올바름은 상대적 개념이 아니다. 올바른 것의 상대 개념은 올바르지 않은 것이다. 이익의 상대 개념은 손해다. 그러므로 두 가지를 무작정 뒤섞으면 곤란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맹자는 평생 ‘올바름(義)’과 ‘이익(利)’에 대해 연구하고 또 말했다. 이를 가리켜 ‘의리사상(義利思想)’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연예인이 말하는 ‘의리(義理)’와는 조금 다르다.
‘의리사상(義利思想)’에서 말하는 ‘의(義)’는 올바름이다. 공익(公益)을 뜻한다. 그렇다면 ‘리(利)’는? 사사로운 이익, 사익(私益)을 뜻한다.
사사로운 이익만을 추구하면 공공의 이익이 훼손될 수 있다. 소수만 이익을 얻고 다수가 손해를 볼 수 있다. 결국 이익의 총량이 줄어드니 결과적으로 손해가 된다.
진정한 이익은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공익(公益)이다. 올바른 길을 가라는 것은 가난하게 살아가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부자가 되는 길이다. 단, ‘나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가’라는 전제조건이 붙을 뿐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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