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순순히 받아들여라
物來而順應(물래이순응)
- 《근사록(近思錄)》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봄을 예찬하지만 봄은 흔들림의 계절이기도 하다.
새싹이 돋아나는 생명의 기운이 충만하지만 그에 따라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 바람이 불고 온도 차이가 심하다. 때론 위태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겉으로는 씩씩하고 명랑해보이지만 사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허덕이거나 흔들리곤 한다. 물론 젊은이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서도 이런 모습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흔들림과 불안을 나쁘게만 보아서는 안 된다. 흔들림과 불안은 성장과 도약, 변화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선배 학자들이 남긴 책 중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모아 주자가 편집한 ‘근사록(近思錄)’을 보면 송나라의 위대한 학자 두 사람, 장재(張載, 1020~1077)와 정호(程顥, 1032~1085)의 대화가 나온다. 그 대화를 한번 살펴보자.
장재가 정호에게 물었다.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외부의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자꾸 마음이 움직여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곤 합니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정호는 이렇게 대답한다. “너무 그것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단지 조용하거나 고요한 상태에 있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움직임 속에서도 안정이 있고 조용함 속에서도 불안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움직임이 다가오면 그것을 순순히 맞아들이고 그것이 사라지면 다시 고요하게 있는 것이 모두 안정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다가온다고 하여 뛰어나가 맞이하지 않고, 또한 그것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쫓아가거나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문을 닫아걸고 홀로 조용히 있는 것과는 다르지요. 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에서 다가오거나 떠나가는 모든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物來而順應). 그 가운데 안정이 있습니다.”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수동적인 자세라고 느껴서는 곤란하다. 외부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외부의 변화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늘 그 자리에 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느끼고 햇빛이 비치면 햇빛을 맞이할 뿐 그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바람을 막는 벽을 세우거나 햇빛을 막는 가리개를 만들지 않을 뿐이다. 열려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외부의 변화를 따라가려고 한다든가 혹은 외부의 변화를 막으려고 하거나 제거하려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외부의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 자세, 열린 자세를 유지하면서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운전대를 잡고 굽어진 길에서는 굽어진 길에 따라, 똑바른 길에서는 똑바르게 운전대를 조정하는 것이다. 다만 운전대를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한다. 놓아버리면 안 된다. 눈을 감아도 안 된다. 눈을 부릅뜨고 전후좌우를 잘 살펴야 한다. ‘난 무조건 직진이야.’를 외치는 순간, 사고로 이어진다. 그것은 올바름이 아니다. 강직함이 아니다. 사고 유발자일 뿐이다. 내 욕망으로 외부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
공자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했다. 누군가 나를 억지로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 싫은가?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유학(儒學)의 스승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것을 주지 말라고 한다. 진정한 소통은 주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말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지 않는다. 듣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소통도 마찬가지다. 흔들리고 불안정한 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품에 안아야 한다. 보채는 아기를 보듬어 품에 안는 것처럼.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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