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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5 격주간 제7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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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환의 고전산책]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된다
人生何處不相逢(인생하처부상봉)
- 《명심보감(明心寶鑑)》 중에서"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힐링(Healing)’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힐링’은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뜻이다. 치유를 받아야 하는 몸과 마음이라면 이미 병에 걸린 것이리라. 그런데 힐링은 특히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마음에 병이 드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움일 것이다. 혼자 따로 떨어져 나가면 병이 든다. 외로워지고 슬퍼진다. 오늘날 사람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도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난 혼자야’라는 생각이 병을 키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라. 우리는 혼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유가(儒家)의 많은 스승들은 세상 전체, 우주 전체의 일부분이 ‘나’라고 인식했다. 우주가 우리 몸이라면 나는 새끼발가락 정도가 된다. 혹은 눈과 귀, 입이나 코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만 우주 전체의 일부분이라 여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눈이나 입이, 코나 귀가, 새끼발가락이 언제 홀로 존재한 적이 있던가. 그들은 서로 이어져 존재한다. 혼자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함께 하는 것이 즐거움이며 편안함이다. 혼자인 것은 불편함이다.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가. 엄마가 없으면 얼마나 두려웠는가. 엄마와 함께 하면 얼마나 든든했는가. 함께 한다는 것은 귀찮음이 아니라 든든함이다. 우주와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은 초라함이 아니라 영광됨이다. 자부심이며 용기백배함이다.
동양고전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신독(愼獨)’이다. ‘신(愼)’은 조심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독(獨)’은 홀로 있는 것을 뜻한다. 혼자 있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조심하라는 뜻으로 상용되는 말이다.
혼자 있었던 적이 없는데 조심하라고? 결론은 혼자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방에 틀어박혀 문을 닫고 있더라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하늘을 가린다고 하늘이 사라지는가. 부모와 형제가 사라지는가. 이웃과 친구들이 사라지는가. 풀과 나무, 공기와 햇빛이 사라지는가. 늘 함께 한다. 언제나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필자가 처음 ‘신독(愼獨)’이라는 말을 만난 때는 중학교 무렵으로 기억된다. 혼자 있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하라는 이 말은 매우 엄격한 자기 통제로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불편한 가르침이었다. 혼자 있을 때에는 아무렇게나 드러눕거나 방귀를 뿡뿡 뀌어도 되는 것 아닌가. 그 자유로움을 포기하라고?
동의할 수 없었다. 혼자 있을 때에도 형식에 얽매여 나를 꽁꽁 가두는 일이라 여겨졌다. 혼자 있을 때에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쉬지도 못한다면 그것은 병을 치유하는 게 아니라 병을 더 도지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동양고전을 접하며 당시 나의 인식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동양의 스승들은 끊임없이 강조한다.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는 이제까지 단 한순간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고. 서로 기대고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고. 혼자 따로 떨어지면 그게 죽음이라고.
“세상은 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좁아서 한번 인연을 맺었던 사람과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人生何處不相逢).”
흔히 남의 원한을 사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한걸음 더 들어가 보라. 눈이 귀를 돕는 것처럼, 입이 새끼발가락을 돕는 것처럼 하라는 뜻이다. 통제가 아니다. 협력이다. 억압이 아니다. 자유로운 소통이다. 그리운 사람과 다시 만나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우리는 단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 그걸 깨닫는다면 세상 모두와 함께 하는 게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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