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은 봄을 지니고 있다
見萬物 自然皆有春意(견만물 자연개유춘의)
- 《근사록(近思錄)》 중에서"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메마른 땅이 촉촉하게 젖어들고, 얼어붙어 꼼짝하지 않던 물이 깔깔깔 웃으며 흐른다. 죽은 듯 딱딱하던 땅을 뚫고 여린 새싹이 돋아난다. 마치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공자와 맹자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은 봄을 찬양해 마지않았다.
흔히 ‘바닥을 친다.’라는 말은 추락이 아니라 반등을 의미한다. 봄은 그래서 바닥에 코를 박는 고통을 수반한다. 초라함의 극치, 어둠의 정점,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장 끄트머리에서 봄은 시작된다.
그런 봄이 코앞이다. 이제 며칠 지나면 봄이다. ‘아직도 추운데 무슨 봄이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2월 4일은 입춘(立春)이다.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입춘(立春)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봄을 맞이하는 자세는 어때야 할까. 봄에 새싹이 굳은 땅을 헤집고 돋아나는 것처럼, 검고 딱딱한 환경을 뚫고 힘차게 일어서야 할까? 아니다. 흔히 ‘반발자국 뒤에 서라.’는 말처럼, 봄에는 겨울의 끄트머리처럼 살아야 한다.
겨울의 끄트머리처럼 행동하라는 말은 봄이 온다는 생각에 함부로 앞서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뚫고 나아가려고 억지로 노력하지 말고 주변에서 나를 밀어 밖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으로 봄을 맞이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 땅속에서 생명의 기운이 가다듬어진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봄에 새싹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기에 겨울은 ‘음(陰)’이고 봄은 ‘양(陽)’이다. 그러므로 ‘음(陰)’에서 생겨나 ‘양(陽)’으로 나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지 억지로 하는 게 아니다(주자(朱子)).”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어날 때 시끄러운 알람시계 소리에 깨어나는 것은 고통이다. 억지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는 것은 어떤가. ‘왜 알람이 울리지 않지?’라고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아직 10분 전이다. 느긋하게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세수도 한다. 그러는 사이에 알람소리가 울린다.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다. 봄은 그렇게 맞이해야 한다. 뚫고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게 아니라 서서히 열리는 자동문을 향해 유유히 걸어 나오는 것이다.
봄이니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일어나니까 봄이 되는 이치다. 점심시간이니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배가 고파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인 상황을 만들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성심을 다해야 한다. 미리 결과를 짐작하며 앙탈을 부리는 게 아니라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게 문제 해결의 열쇠다. 자연스럽게, 적절하게 하면 시계를 보지 않아도 그 때가 되었음을 몸으로 알게 된다.
어떤 일이든 성심을 다하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곁에서 도와주게 되어 있다.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회피일 뿐이다.
기우제(祈雨祭)를 올려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드리면 된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다만 성실히 이어가는 게 키포인트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어떠한 일도 결국 이루어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송나라의 학자 정호(程顥)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조용히 안정시키고 세상을 둘러봐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 속에 이미 따스하고 활기찬 봄의 기운을, 즐거운 생명의 기운을 지니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靜後見萬物 自然皆有春意).”
봄을 기다린다면 먼저 내 마음 속에 있는 봄부터 발견하라. 스스로 봄처럼 활짝 피어나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가라.
그렇게 하면 당신이 서 있는 것 자체가 ‘입춘(立春)’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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