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을 녹이는 선물
김 혜 정 지도교사 (신안 안좌고등학교4-H회)
12월 들어 동장군이 서슬 퍼렇게 위력을 떨쳤다. 겨울은 겨울 같아야 한다지만 오리털 패딩 점퍼를 입고도 입김과 함께 아이고 추워가 저절로 새어 나오는 혹한이다. 아이들은 마냥 신나서 흰 눈덩이 꼭꼭 쥐어 친구들에게 날리며 눈싸움도 하고, 젊은이들은 스키를 즐기기도 하지만, 이 겨울에 맞서 빙판을 달려야 하는 폐지 줍는 노인들도 있다. 차가운 손수레를 밀고 끌고 얼음길을 제쳐야 하루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이 계절은 결코 낭만일 수 없다.
우리나라 폐지 줍는 노인 인구가 18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연령대는 71~80세가 절반이 넘으며, 폐지 수집을 통한 월 평균수입이 5~10만원 정도다. 이는 월세나 임대료를 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다음으로 주부식비, 의료비, 공과금 순이었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절반 이상이 빈곤지대, 사회보장 사각지대에 내몰려 폐지를 줍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갈 수 없는 지경이다. 기초건강상태 또한 벼랑 끝 지점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주변의 소외된 노인을 돌아보자는 것이 강풀의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인 것 같다. 그렇다고 고령화, 소외된 노인문제 등의 사회 문제에 대하여 정면에서 대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고령화 사회에 노인들의 빈곤과 건강 문제를 아주 잔잔하게 그려내면서 거기에 노인들의 사랑을 10대의 첫사랑과도 같이 순수함과 애틋함으로 전하고 있어 읽고 보는 독자에게 더 큰 울림과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70대 할아버지, 할머니다. 작품은 김만석 할아버지의 우유배달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괄괄한 성격과 입담을 가진 새벽 우유 배달부 김만석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배달길에 마주치는 파지 줍는 할머니 송씨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눈이 오는 날 할아버지가 우유배달을 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언덕길을 오르다가 오토바이 바퀴에 튄 작은 돌멩이 하나가 송이뿐 할머니의 얼굴을 때리고 만다. 그리고 할머니의 리어카는 미끄러져 폐지들이 눈길에 쏟아진다. 이후 미끄러운 비탈길에서 송씨를 도와주고 기다리는 나날을 보내며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리고 또 한 커플의 주인공이 있다. 주차관리 일을 하고 있는 장군봉 할아버지와 치매를 앓고 있는 그의 부인 조순이 할머니다. 장군봉은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이 집에서 나와 길을 잃을까봐 자신이 일을 하는 동안 대문을 밖에서 잠그고 다닌다. 그런데 어느 날 실수로 급하게 나가느라 대문을 잠그지 않고 나가게 되고, 아니나 다를까 군봉의 부인은 그날 집을 나와 길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군봉의 부인은 만석과 송씨에게 발견되어 군봉과 재상봉을 하게 되고, 이날을 계기로 만석과 송씨는 만남을 지속하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70대에 마음 설레는 사랑을 하게 된다. 송이뿐 할머니 모르게 리어카가 언덕길을 다 내려올 때까지 잡아주는 만석, 그리고 자신이 직접 편지를 쓰고 싶다며 군봉에게 한글을 배우는 송이뿐 할머니. 인생의 노년기에 새로이 찾아온 인연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결말을 맺게 될까 읽는 내내 가슴이 저며 왔다. 마치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알 것만 같은 이성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감성을 가진 세상의 노인들. 인생의 의미를 천 번도 넘게 곱씹어 보았을 그들의 사랑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라는 궁금증은 강풀에게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그리게 했다. 그리고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웹툰 연재에서 시작하여 단행본, 영화, 뮤지컬 등의 많은 컨텐츠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사회적인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그동안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노인문제에 대해서 다루며 젊은이들의 회개와도 같은 반성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강풀은 만화 연재 후기에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송이뿐 할머니의 탄생은 자신의 할머니로부터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만석과 송씨의 사랑이 귀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려진 것 같다.
이 외에도 강풀 만화는 심심풀이 수준이 아니다. 스토리가 있고 전하는 메시지가 강하다. 역사와 사회의 문제를 잘 꼬집어 풀어 내며 쉽게 읽게 하지만 큰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 작품에 대한 독자층은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계층으로 폭이 넓다.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이 추위를 견디며 온기 없는 쪽방에 전기세 걱정하며 이불하나 둘러쓰고 생을 연명해야 하는 소외된 사람들과 홀로 된 노인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하 몇 도까지 떨어지는 이 혹한의 계절, 우리 마음은 매서운 계절이 아니길 기도한다. 2015년에는 소외된 이웃을 향한 관심과 배려가 늘어나길 기대하며 혹한을 녹이는 따뜻한 감동을 선물로 줄 이 책을 소개해 본다.
〈강풀 지음 / 재미주의 / 2012년 / 전3권 3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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