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5 격주간 제795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한 해를 마감하는 자세

"살짝 얼어붙은 강물 위를 걸어가듯 조심스럽게
戰戰兢兢 如履薄氷(전전긍긍 여리박빙)
- 《시경(詩經)》 중에서"


유학(儒學)의 가르침은 항상 대조법을 지니고 있다. 빛과 그림자, 밝고 어두움, 양(陽)과 음(陰)을 비교해가며 설명해준다. 그러므로 그 중에 어느 하나만 가지고는 전체를 설명하기 힘들다.
용감하게 나아가는 것과 조심스럽게 앞뒤를 살피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무작정 용감무쌍하게 나아가는 것도 만류하지만, 무조건 조심하는 것도 권장하지 않는다.
모호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명확하다. 밤낮이 바뀌는 과정을 보라. 처음의 그 시작은 매우 애매모호하다. 그러나 명확하게 바뀐다. 계절이 바뀌는 모습은 어떠한가. 무슨 계절인지 애매한 간절기 혹은 환절기를 거친다. 그러나 애매모호하다고 해서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겨울과 봄 사이의 애매함이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징조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잘 살펴보면 금방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낮부터 술에 취해 잠든 사람이 새벽 3, 4시에 깨어났다면 아침이 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밤이 깊어가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몽롱한 사람이 아니라면 밝은 아침이 오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열심히 일하다가 밤 9시에 잠들었던 사람과 낮 2, 3시에 술에 취해 잠든 사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항상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명확한 파악이 가능하다. 일상생활 작고 사소한 부분부터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살아가면 ‘사리분별(事理分別)’이 가능하다. ‘사리(事理)’라고 했을 때 ‘사(事)’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이고 ‘리(理)’는 그 안에 감추어진 이치다. 맑은 정신을 지니고 있으면 그것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캄캄한 밤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사(事)’라면 ‘리(理)’는 그 어둠이 새벽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더 깊은 밤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기에는 어떻게 생활하는 게 좋을까.
‘주역(周易)’에서는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짓날을 ‘복(復)’이라는 글자로 설명한다. 그냥 ‘복(復)’이 아니라 ‘지뢰복(地雷復)’이라고 말한다. 땅 속에서(地) 천둥(雷)이 친다는 뜻이다. 조용한 것 같지만 땅속에서는 봄기운이 용틀임하고 있다. 봄이 돌아오기에 복(復)이다. 그러면서 이런 설명을 달았다.
“문을 닫아걸어라(至日閉關).”
밤이 가장 긴 날이 되었을 때 드디어 밤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하며 움츠렸던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아니다. 새로운 시작은 여린 새싹일 뿐이다. 아기처럼 약하다. 자칫 잘못하면 상처를 받아 봄이 되어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을 닫고 봄의 싹을 지키는 것이다. 조심하는 것이다.
이번 연말에는 들뜬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고 조용히, 단정한 연말을 지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단정히 보내고 싶다고 여러 의미 있는 송년회를 무조건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맑은 겨울 아침, 시경에 나오는 시 한 구절을 음미하며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누가 감히 맨손으로 호랑이에게 덤벼드는가, 누가 감히 깊은 강을 걸어서 건너려고 하는가(不敢暴虎 不敢馮河). /하나만 알고 그 나머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人知其一 莫知其他). /두려워하며 조심하라, 깊은 물가에 있는 것처럼, 살짝 얼어 있는 강물 위 얼음을 밟고 있는 것처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한해를 마무리하는, 깊은 겨울밤은 만삭의 여인과 같다. 이제 조금 지나면 소중한 아기가 탄생한다. 그렇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기쁨을 만끽하는 여인은 없다. 태교에 치중하며 조심스럽게 지내야 한다. 소심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용감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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