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따라 적절히 하라
君君臣臣父父子子(군군신신부부자자)
- 《논어(論語)》 중에서"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君君臣臣父父子子) 이 말은 매우 단순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생각해보라. 임금이자 아버지이며 아들이기도 한 사람도 있고, 신하이면서 아버지이며 아들인 사람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적절히 해야 한다. 어느 하나에 고정되거나 얽매이면 안 된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적절히 하라.”와 통하게 된다.
공자의 사상은 이토록 유연하다. 고정되거나 딱딱한 게 아니다. 공자가 이처럼 어느 한 곳에 고정되거나 얽매이지 않게 된 이유는 자연의 변화를 보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공자의 스승은 자연의 변화뿐만이 아니었다. 또 하나가 더 있었다. ‘논어(論語)’술이편(述而篇)을 보면 그런 대목을 만날 수 있다.
‘子曰 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자왈 가아수년 오십이학역 가이무대과의)’ 이 문장은 번역이 쉽지 않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오래된 고전(古典)일수록 그 해석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 의미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진나라 시절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인해 그렇기도 하다. 분서갱유 당시 공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책은 모조리 불태워졌고 몰래 감추고 있다가 걸리면 죽음을 감수해야할 정도였으니 오죽했겠는가.
세월이 흐른 후 기억에 의존해 손으로 쓴 책이 남게 되었는데 기억에 의존하거나 다른 사람이 베낀 책을 옮겨서 적다보니 오류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논어(論語)’도 예외가 아니기에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문장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나에게 몇 년의 시간이 더 주어져, 50세 정도에 ‘주역(周易)’을 모두 배워 익히면, 큰 잘못이 없어질 텐데….”이다.
이게 맞는 해석이라면 이런 말을 할 당시의 공자는 50세 이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각종 역사서를 들춰보면 공자가 ‘주역(周易)’에 관심을 갖고 애지중지하던 시기는 말년이라고 나온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공자는 말년에 ‘주역(周易)’을 끼고 살았다. 어찌나 들춰보았는지 가죽으로 묶은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73세에 사망한 공자의 40대 시절을 말년이라 하기에는 어색하지 않은가. 이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게 된 까닭이다.
주자는 이 문장에 나오는 ‘五十’은 ‘50세’가 아니라 ‘세상을 떠난다’는 뜻을 지닌 ‘졸(卒)’이라고 주장한다. 누군가 베껴서 쓸 때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주자가 옳다면 “나에게 몇 년의 시간이 더 주어져, 내가 죽기 전에 ‘주역(周易)’을 모두 배워 익히면, 큰 잘못이 없어질 텐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확한 해석은 전문 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여기서는 ‘주역(周易)’에 주목하자.
일반적으로 ‘점치는 책’으로 알려진 게 ‘주역(周易)’이다. 그런데 실용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인 공자가 끈이 끊어질 정도로 ‘주역(周易)’을 뒤적였다고? 믿기 힘들겠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왜 ‘주역(周易)’을 이토록 애지중지했을까.
君君臣臣父父子子(군군신신부부자자)하기 위해서는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임금으로 행동하는 게 적절한지, 아버지로 행동하는 게 적절한지, 아들로 행동하는 게 적절한지 알아야만 한다.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파악, 그리고 그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 바로 ‘주역(周易)’이라고 공자는 생각했다. 그러니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회에서는 ‘주역(周易)’에 대해 알아보자.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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