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1 격주간 제790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공자의 스승은 누구인가? ②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의 스승이다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
- 《논어(論語)》 중에서"


‘논어(論語)’에 나오는 그 유명한 ‘삼인행(三人行)’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흔히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가더라도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 그들 중 좋은 점을 가진 사람의 장점을 가려 이를 따르고, 좋지 않은 점을 가진 사람의 나쁜 점으로는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조금 아쉽다.
동양에서 말하는 ‘3’은 단순한 숫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사람(人)을 합쳐서 말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의 해석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의 스승이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행(行)’을 단순히 ‘길을 걸어간다.’로 해석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실천이고 행동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새롭게 번역한다면 ‘하늘과 땅과 사람을 포함한 세상 전체의 변화하는 모습, 계절이 바뀌고 밤낮이 바뀌는 모습, 역사가 바뀌는 모양새를 살펴보라. 그리고 그것을 보고 배워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나는 하나의 이치로 모든 사물을 연결시킬 뿐이다(一以貫之).”라는 공자의 말을 기억하는가. 다시 ‘논어(論語)’로 돌아가 다음의 대화를 읽어보자.
“공자가 말했다. ‘난 이제 말을 그만하려고 한다(予欲無言).’ 그러자 자공이 깜짝 놀라면서, ‘아니, 스승님.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이제 우리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겠다는 뜻입니까?’라고 물었다. 자공의 말을 들은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하늘을 보라, 우주를 보라, 세상을 보라. 그들이 무엇에 대해 말하거나 의논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잘 돌아간다. 계절이 바뀌고 밤낮이 바뀌며 새싹은 돋아나고 꽃은 피고 열매가 맺는다. 그런데 왜 말이 필요하다고 하는가?’(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향하는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감추어진 뜻을 깊게 생각하여 깨달음을 얻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저 문장에만 매달리는, 말꼬리만 잡고 늘어지는, 달을 가리키는 데 손가락 모양에만 집착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는 공자의 가르침은 ‘말없음(無言)’이다.
공자의 스승은 세상 전체였다. 역사와 문화, 하늘과 땅, 물과 나무, 바람과 구름, 사람과 짐승, 해와 달이 모두 그의 스승이었다.
그것들을 잘 살펴보니 하나로 이어짐을 깨달은 것이다(一以貫之). 그 하나란 무엇인가. 주어진 상황에 맞게 적절히, 나만 챙기지 말고 모든 것들과 더불어 조화롭게, 빈둥거리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언제나 정성스럽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서도 겸손하게, 우주처럼 하늘처럼 땅처럼 물처럼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렇게나’가 아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자는 시(詩)와 역사(歷史)에 집중했다. 공자의 설명에 의하면 ‘시는 내 마음 속의 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可以興), 모든 것들을 관심 있게 살펴보게 해주며(可以觀), 사람들과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해주며(可以群), 세상의 온갖 것들, 나무와 풀과 새와 짐승들에 대한 지식을 쌓게 만들어주는(多識於鳥獸草木之名) 것’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춘추’에 대해 “후세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춘추’ 때문일 것이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춘추’ 때문일 것이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춘추’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면 일단 시와 역사만이라도 스승으로 모시는 것은 어떨까?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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