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가의 기적
성공하는 대중영화는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경우가 많다. 인물들이 스크린 위에서 움직이며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으면 유치해지거나 비약되어 버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는 현실에 존재하는 ‘리얼 환타지’, 혹은 ‘일루션 오브 리얼리티’라고도 불린다. 현실을 얼마나 환타지하게 그리느냐, 혹은 환타지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그리느냐의 문제는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숙제다.
윤제균 감독의 세 번째 작품 ‘1번가의 기적’은 바로 그 고민이 잘 녹아 있다. 제목에서부터 ‘1번가’는 철거민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을, ‘기적’은 그 상황 변화의 환타지를 예측하게 한다.
용역 깡패 필제(임창정)는 1번가에 재개발 계약서 주민동의를 받기 위해 도착한다. 무력과 협박으로 서명을 받으려고 하지만 현실에 찌든 1번가 사람들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장기전에 돌입하게 되고, 점점 필제가 그 마을 사람들에게 동화되기 시작한다. 필제는 자신을 9시 뉴스 기자라고 속이며, 나오지 않던 수도를 나오게 하고, 들어오지 않던 인터넷을 들어오게 한다. 아이들은 필제가 온 뒤로 1번가의 변화를 목격하게 되고 그를 슈퍼맨이라고 부른다. 필제는 그러는 와중에 1번가에 자리 잡고 사는 명란(하지원)을 만난다. 명란(하지원)은 과거 링에서 쓰러진 뒤 반신불수가 돼 버린 아버지(정두홍) 앞에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자 동양 챔피언을 꿈꾸는 복서다. 필제는 마을 사람들과 점점 가까워질 뿐 동의서는 받아내지 못하고 있을 때 명란은 동양챔피언 타이틀 경기 일정이 잡힌다. 그런데 바로 그날 필제의 우유부단함을 참지 못한 용역 깡패들이 마을을 급습한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용역 깡패들의 힘에 눌려 쫓겨나게 된다. 바로 그때 1번가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영화는 필제라는 인물을 통해 암담한 현실일 수 밖에 없는 ‘1번가’에 웃음의 환타지를 불어 넣는다. 찡그리던 사람이 웃고, 즐거움을 모르던 아이들이 함께 뛰어논다. 관객들이 자신의 현실을 스크린 속에 감정이입하고 금세 웃고 울도록 만들어진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극중인물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놀이동산의 환타지일 뿐이었다. 결국 현실을 뛰어 넘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으로 끝내고 만다. 기적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역시 바로 그 환상 때문이 아닐까.
‘1번가의 기적’은 바로 그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과 너무나 처참한 현실을 잘 버무린 대중영화다.
〈손광수 /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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