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15 격주간 제787호>
[이 달의 착한나들이] 꽃차 속으로 떠나다
눈물처럼 투명한 찻잔에 날개를 활짝 편 코스모스를 보면서 난 그녀의 부모님이 꽃 속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이번 휴가로 단양에 다녀왔다. 길이 막혀 여름휴가는 거의 가지 않는데 느닷없이 발동이 걸린 것이다.
그것은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친구가 단양에 집을 짓고 내려간 지 2년 만에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맑은 유리잔에 띄워놓은 코스모스 사진 한 장이 얼마나 유혹적이던지 난 집을 나섰다. 지금 미루면 또 언제 만날지 모를 초조함 때문에 해가 기우는데 출발한 것이다.
길치인 나는 내비게이션을 보며 운전을 하다 보니 감이 안 잡혀 헤매기 시작했다.
지방도로를 타고 엉뚱한 마을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오길 여러 번. 해는 지고 거센 빗줄기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캄캄한 빗속을 긴장하며 기어가다시피 하니 친구 집은 외계처럼 요원하게 느껴졌다. 식은 땀이 나고 어지러웠지만 전투에 임하듯 어둠을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몇 번의 애절한 통화 끝에 친구 집에 도착한 건 새벽 한 시가 다 되어서였다.
우리는 감격에 겨워 얼싸안았다. 친구에게서는 꽃향기가 났다. 나는 피곤했지만 친구가 끓여준 꽃차를 마주하고 앉았다.
사진에서 본 코스모스차. 사진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차를 마시며 친구를 보았다. 꽃찻집을 내는 게 소원인 친구 눈이 별처럼 빛났다. 친구는 분명 자신의 꿈을 즐기며 살고 있음이 분명했다.
코스모스가 뜨거운 물속에 피어있는 걸 보며 “꽃을 두 번 죽이는 거 아냐?” 라고 하자 친구는 “두 번 살리는 거지” 라며 웃었다.
친구는 찻물을 따르며 말했다. 옛날에 그녀의 아버지는 마당가에 코스모를 즐겨 심었는데 엄마는 꽃이 밥이 되냐며 모조리 뽑아 던지고 먹거리를 심었다고. 그래서 문밖에 던져진 꽃들을 보며 눈물 흘린 적이 있었다고.
눈물처럼 투명한 찻잔에 날개를 활짝 편 코스모스를 보면서 난 그녀의 부모님이 꽃 속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문득 푸른 초원이 떠올랐다.
몇 년 전 몽골 국립공원 테를지에서 말을 탄 적이 있었다. 끝도 없는 초원에는 은하수처럼 많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에델바이스, 자운영, 솔체꽃, 산부추꽃, 엉겅퀴, 개양귀비, 백리향, 라벤다…. 가까이서 보면 저마다 강렬한 빛깔들인데 멀리서 보면 파스텔톤으로 변해 아지랑이처럼 아득히 번져나가고 있었다.
천지에 가득한 꽃들은 바다가 되어 들판에서 일렁이고 난 말을 타고 그 위를 둥둥 떠다녔다. 초원에서는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그곳에서 보았다. 말이 연신 꽃을 따먹으며 걸어가는 것을. 목을 늘이고 어찌나 맛나게 먹는지 나를 태운 건 잊은 듯했다.
그때 앞서 가던 말의 엉덩이에서 물컹물컹 꽃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처음 본 광경에 나는 숨을 죽였는데 말은 너무나 태연히 볼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요의를 느꼈다. 나는 말에서 내려 볼일을 보았다. 꽃들이 뜨신 나를 받아먹었다. 다시 말을 타자 촉촉이 젖은 꽃들은 말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몽골초원에서 내가 꽃이 됐고 말이 됐다. 사람이 죽으면 풍장을 했다는 몽골, 거기선 여기저기 흩어져 빛바랜 뼈들도 하얀 꽃으로 피어나 대자연이 하나임을 느끼게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꽃차 속에는 그녀의 부모님과 꽃을 먹는 말이 살고 있었다. 한밤중 장마를 뚫고 달려와 얼싸안은 우리의 만남도 언젠가 그 속에 한 무더기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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