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어느 소년의 자아 성장기
김 성 기 지도교사 (김포 통진중학교4-H회)
6월 초 4-H회원들과 벼화분 심기를 하면서 우연히 세계의 빈곤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지구촌 아이들의 빈곤의 문제와 아동 노동학대 그리고 국가 간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우리 청소년들이 중요하게 관심 가져야 할 문제임을 깨닫게 됐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책을 읽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면 좋을까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추천한 책이 바로 ‘택시 소년’ 이라는 책이다.
어떤 소설이든 그 내용이 읽는 사람의 경험과 생각의 폭을 지나치게 넘어서게 되면 호기심을 자극하기 보다는 흥미를 반감시키기 마련이다. 처음 이 ‘택시 소년’을 읽었을 때 주인공 디에고의 삶은 보편적 공감대를 끌어내기에는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꼼꼼히 읽었다. 그러자 소설의 행간에서 주인공 디에고 부모의 억울함과 절망감, 디에고의 자유를 향한 간절함 그리고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부조리함에 대해 읽을 수 있었다.
작가 데보라 엘리스는 이전에 출간했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처럼 가난과 전쟁, 인종 차별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제3세계 아이들의 이야기를 주로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택시 소년’도 작가의 이러한 경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로, 감옥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택시’를 하다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디에고는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볼리비아 어느 감옥에 사는 아이다. 그의 아빠 또한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다. 가난한 농부였던 그의 부모는 코카인을 운반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지 4년. 그 자식들과 함께 앞으로 13년을 더 감옥에 살아야 한다. 감옥에서는 의식주 모두를 스스로 해결해야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한다. 열 두 살 소년 디에고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디에고가 하는 일은 일명 ‘택시’. ‘택시’는 디에고와 같이 죄수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감옥에 사는 아이들이 죄수들의 심부름을 해주고 그 값을 받는 일을 말한다. 유일하게 감옥과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실수로 디에고는 택시 영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고 감옥을 벗어나기 위한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감옥을 벗어나 디에고가 그의 친구 만도와 함께 가게 된 곳은 다름 아닌 정글. 정글에서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코카인 반죽을 만드는 일이다. 자유와 돈을 얻기 위해 감옥을 벗어났지만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은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노예와 같은 삶. 그러나 디에고는 ‘온 가족이 함께 살 집을 자신의 손으로 짓고 엄마와 아빠가 자유의 몸이 되는 날 고향인 코차밤바로 달려가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꿈이 지옥과 같은 현실을 이겨내고 노예와 같은 삶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는 빈곤의 문제와 아동 노동학대와 같은 사회 부조리의 문제, 누명을 쓰고도 어찌하지 못하는 사회적 불공정의 문제, 학교에서의 인종 차별의 문제, 국가 간의 불평등의 문제를 한 소년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극복의 과정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인공이 처한 불우한 환경과 고통스러운 상황 그 자체보다는 이러한 환경과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강한 의지와 그것의 원천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이 주인공의 실패담에 그치지 않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주인공 디에고가 죽음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억울한 누명으로 17년을 감옥에서 지내야하는 절망감에도 자식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던 부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우리 주변에도 현실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왜곡된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학생들이나 처음부터 미리 포기하고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아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결국 이러한 것들을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어려서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거대한 사회적 구조나 환경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들에게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스스로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4-H회원들과 지구촌 아이들의 빈곤의 문제나 아동 노동학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할 기회가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돌려 읽고 시작하기를 바란다.
<데보라 엘리스 지음 / 윤정숙 번역 / 천개의바람 펴냄 / 1만1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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