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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원 앞에서 왠지 내가 치료받고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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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동시장에 같이 가자는 것이다. 무료 한의학 박물관도 있다는 말에 혹해 따라나섰다. 외국 사람도 여행을 오면 많이 찾는다는 우리나라 제일의 약령시장이 있는 곳, 난 아직 가본 적이 없었다.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3번 출구로 나가니 한의학 박물관이 보였다. 우리는 거기부터 들렀다. 박물관은 기대 이상이었다. 수많은 약재와 함께 사상체질 검사, 스트레스 검사도 무료로 해주고 따듯한 한방차도 대접해주는 인정스런 박물관.
특히 감동을 준 것은 ‘보제원’이다. ‘보제원’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빈민 구제기관이다. 배고픈 사람 먹여주고 잘 곳 없으면 재워주고 병든 자를 치료해주는 ‘보제원’을 재현해 놓은 모형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왠지 내가 치료받고 위로받는 느낌에 코끝이 찡했다.
요즘 세월호 사건으로 연일 우울했던 마음의 근원이 결국 외로움이었던가? 기댈 곳 없이 진도 바다로 쓰러져 버린 세월호. 나도 옆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 지난날 나는 몸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몰랐다. 앞만 보고 질주하다 결국 쓰러져서야 내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를 통감했다. 나이를 생각지도 않고 오만하게 힙합을 한다고 뛰어다니다 무릎을 다친 지 5년째. 처음엔 낫겠지 방심하다 나중엔 수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요행을 바라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 다리는 점점 나빠졌고 허리까지 협착되었다. 알레르기 비염,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도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끌고 왔다. 고장난 내 몸에 대한 무리한 운행으로 나는 지금 한쪽 다리를 절며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명의인 편작이 말했다. 고칠 수 없는 병이 있다고. 교만 방자하여 병의 원리를 알려고 하지 않음이 첫 번째 불치요, 몸을 가벼이 여기고 돈을 중히 여겨 병을 치료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불치요, 의·식·주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것이 세 번째 불치라 했다. 또 편작이 중국 채나라 왕을 세 번이나 찾아가 병이 있음을 간곡히 알려주었지만 교만한 왕은 듣지 않았다. 네 번째 찾아간 편작은 물끄러미 왕을 바라보다 그냥 돌아섰다. 이미 골수까지 병이 깊어진 것이다. 물론 왕은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는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깨우쳐주는 ‘병입골수(病入骨髓)’에 대한 이야기다.
한의학은 예방의학이다. 만병은 몸이 굳어 있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근육활동을 통해 기혈을 통하게 하고 체질을 개선하고 질병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이 나기 전에 고치는 것이 상수고 병이 난 후에 고치는 것은 하수라는 것. 그렇다면 나는 하수 중에 하수다. 박물관엔 허준의 ‘동의보감’도 있었다. ‘동의보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그 이유는 기존 중국 의서가 질병 중심인 반면 ‘동의보감’은 사람 중심이라는 것.
오늘 나는 박물관에 들러 후회와 함께 나를 돌아보는 여행을 했다. 그리고 깊은 애정으로 세월호와 정치인과 우리 사회를 함께 떠올렸다. 개인이나 나라나 혹시 골수까지 깊어진 자신의 병의 원리를 보지 못하고 남 탓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이 중심인 세상을 생각하며 나는 약령시장으로 향했다. 알레르기 비염에 좋다는 우근피를 끓여 나 자신을 대접하는 상상을 하면서.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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