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01 격주간 제780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정성스러운 노력이 유일한 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孰有生知者哉(숙유생지자재)
- 《성학집요(聖學輯要)》 중에서"


중국 송(宋)나라 때의 학자 정호(程顥, 1032~1085)와 정이(程, 1033~1107)는 형제다. 이 두 사람은 맹자(孟子, BC 37~BC 289) 이후 약화되던 유가(儒家)의 학문을 크게 부흥시킨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성향은 매우 달랐다. 동생인 정이는 ‘추상열일(秋霜烈日)’로 통했고, 형인 정호는 ‘춘풍화기(春風和氣)’로 불렸다. ‘추상열일(秋霜烈日)’은 글자 그대로 가을의 찬 서리요 여름의 강한 햇빛이다. 차갑고 뜨겁다. 이론적이고 분석적이다. 냉철하고 열정적이다. ‘춘풍화기(春風和氣)’는 어떠한가. 봄날의 따스한 기운이다. 온화하고 부드럽다.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통합하고 포용한다.
이토록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두 사람이 함께 연구하고 공부했으니 그 결과가 얼마나 정밀하면서도 아름다웠겠는가. 퇴계와 율곡도 그러했다. 퇴계가 보드랍고 따스한 봄바람 같은 사람이었다면 율곡은 뜨겁고 차가왔다. 논리적이며 냉철했다. 그러므로 학문을 이어가다가 어려움에 빠져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 주는 해법도 퇴계와는 달랐다.
율곡은 ‘공부를 가로막는 나쁜 습관 8가지’(2013년 9월 1일자 참조)를 열거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나쁜 습관들은 매우 위험하다. 어제의 잘못을 깨닫더라도 다음날이면 다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되고, 아침에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다가도 저녁엔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잘못된 예전의 습관들이 있다면 단단히 마음을 먹고 단칼에 잘라버려야 한다. 조금씩 고쳐나가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조금씩 고치며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다 고쳐지는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은, 얼핏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헛소리라는 뜻이다. ‘매일 조금씩’은 긍정적인 것에 적절한 방법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식은 ‘조금씩이라도 꾸준히’가 통한다. 그러나 이미 습관으로 익어 있는 것을 개혁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율곡의 이러한 스타일은 맹자와 연결된 것이다. 맹자가 어느 정치인에게 세금을 줄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옳은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당장은 상황이 좋지 않으니 내년부터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공자의 날선 비판이 이어진다.
“매일 이웃집 닭을 훔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누군가 그 사람에게 ‘그것은 잘못된 일이니 이제 그만두시오.’라고 충고하자 그 사람이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만두면 무리가 따르므로 매일 훔치던 것을 이제부터는 한 달에 한번만 훔치는 것으로 하고, 1년 뒤에는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옳은 일일까요?”
맹자는 세계적으로 수많은 논객 중에 최고봉이었다. 율곡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율곡 앞에 서면 모두가 죄인처럼 초라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맹자나 율곡이 싸움꾼은 아니었다. 하도 답답하니 강력하게 말했을 뿐이다.
율곡이 공부하는 자세를 설명한 것 중에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악기를 다루는 사람에 대한 비유다.
“어린 아이가 악기를 처음 배울 때를 상상해보십시오. 그들은 마구 두들기고 함부로 연주합니다. 그렇기에 옆에 있는 사람은 귀를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꾸준히 연습한 이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 소리는 맑고 아름답습니다. 그 조화로움이 너무나 오묘하여 듣는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孰有生知者哉). 피나는 노력과 훈련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과연 그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처럼 자유자재로 일상생활 속에서 학문을 활용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것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는 연주자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주변을 살펴보라. 삼라만상 우주의 모든 것들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그것이 이치다. 율곡은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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