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시기를 지나야 얻는 게 생긴다
仁者 先難而後獲(인자 선난이후획)
- 《논어(論語)》 중에서"
퇴계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굳이 해야 한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닐까 한다. 겸손(謙遜)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그렇다면 퇴계가 실제로는 매우 뛰어난데 그렇지 않은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는 뜻일까?
아니다. 퇴계는 스스로 자신이 매우 미흡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진짜로 자신의 학문이 아직 초라한 지경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한 자세가 위대한 퇴계를 만들었다. 자신이 아직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는 것은 매우 위대한 일이다. 소크라테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True knowledge exists in knowing that you know nothing.(모른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앎의 첫걸음이다.)”
모바일 게임에 비교해보자. 몇 번 스테이지를 진행하다가 자꾸만 실패하는 ‘넘사벽’ 스테이지를 만났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대로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끼며 용맹스럽게 연구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도 있다. 진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 어떠한 장애물도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 부모가 혹은 선생님이 모바일폰을 빼앗으려 하더라도 막지 못한다. 기필코 이루어내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의지가 있는 사람은 하루하루가 재미있고 신나지만 의지가 없으면 따분하고 지루하다. 고통스러운 현재의 삶이 누구에게는 자살 충동을 느끼게 하지만 누구에게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렬한 에너지를 충전시켜준다.
아직 모자라다는 것은 더 채우기 위한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포기하고 싶다고 느끼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변명거리만 찾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이만하면 충분하다.”라고 안주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다 알겠다.”고 자만하는 순간, 성장은 멈추고 위태로움이 시작된다.
이에 대한 율곡의 말을 들어보자. “공자는 선난후획(先難後獲)이라고 했습니다. 노력이 있으면 당연히 효과가 나타나는 법인데, 그것을 미리 기대하다니요. 지금 사람들의 병폐는 선난(先難)하려 하지 않고 선획(先獲), 즉 미리 결과를 보려고 안달하는 데 있습니다. 기대만 잔뜩 할 뿐, 실생활에서는 노력하지 않습니다. 결과부터 알려달라고 안달을 부립니다. 그게 아니면 일을 시작하지도 않습니다. 이걸 고쳐야 합니다.”
먼 길은 한걸음에 닿을 수 없고, 높은 곳은 단번에 뛰어올라갈 수 없다. 그저 묵묵히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날마다 걷고 오르며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곳에 도착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업적이 되고 결과가 된다.
그러나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안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이에 대한 퇴계의 충고에 귀기울여보자.
“마음에 생기는 병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무리하게 파고들다가 지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빨리 결과를 내려고 안달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유 있게 지내십시오.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감상하십시오. 화초를 감상하고, 시내와 물고기와 벗하십시오. 늘 보는 것이라 해서 싫증 내지 마시고요, 울컥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책도 많이 읽으려 하지 말고 적절히 음미하는 데 그치십시오. 진리는 일상적이고 단순한 데에 있습니다. 일상을 떠나지 마시고, 헤엄치듯 그곳에서 노니십시오. 부릅뜬 눈으로 자신을 속박하지 마십시오.”
잠시 쉬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산과 강, 구름과 하늘을 살펴보면 거기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명경지수(明鏡止水)’라 하지 않던가. 출렁이는 물은 거울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율곡의 해법은 무엇이었을까?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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