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15 격주간 제777호>
[이 달의 착한여행] 3월 따뜻한 골목, 그 기억 속으로
예쁜 꽃들이 심어지기를 기대하며 봄을 기다리는 화분들.

신림동에서 후배를 만나기로 했다. 신림동하면 친정집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어려서부터 시집갈 때까지 살았으니까. 지금은 아무도 없지만 오랜만에 불현듯 살던 집에 가보고 싶어졌다.
후배와 만난 곳은 신림동 사거리의 유명한 순대촌, 건물 전체가 순대만 파는 곳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울대가 있어 그런지 푸짐했고 먹을만했다. 후배는 아들 셋을 키우면서 올해 대학원까지 졸업한 주부다. 나이는 32살. 나도 그녀의 나이 때까지 신림동에서 살았었다. 그녀와 백순대를 깻잎에 싸먹으며 졸업 축하주를 한잔하고 우리는 금세 헤어졌다. 아이들 때문에 후배는 늘 시간에 쫓긴다고 했다.
나는 신림사거리에서 그 옛날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들어가는 입구는 많이 변해 있었다. 나는 외국에서 고향에라도 온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길을 따라 들어가며 낯익은 철물점을 발견했다. 오래된 슈퍼도 보였다. 처녀적 하이힐을 신고 밤늦게 또각거리며 걸어가던 이 길. 저만치 엄마가 날 기다리던 골목이 보였다.
엄마 가시고 십 년 만에 와보는 이 골목.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여기 사셨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수의도 손수 해놓으시고 영정사진도 걸어놓고 혼자 사셨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와보지도 못했다. 나도 엄마처럼 늙어 갈 것이다. 홀로 사는 노인이 백만 명이 넘은 시대, 노인은 외로운 약자다. 그래서 노인끼리 모여 사는 공동주거제가 요즘 일부에선 실시되고 있다. 다행히 엄마는 이 골목에 오래 살아 친구가 많았다. 나는 아이가 사탕을 아껴먹듯 일부러 우리 집 앞을 지나갔다 돌아 나오길 반복했다. 오긴 왔지만 갈 곳 없는 골목길. 집들은 낡았으나 변한 건 없었다. 난 우리 집 문 앞에 섰다. 누가 사는지 꽤 많은 플라스틱 화분이 문밖에 나와 있다. 봄을 기다리는 빈 화분들. 이제 곧 예쁜 꽃들이 심어지겠지. 대문 없는 이 골목엔 예전부터 화분이 많았다. 금간 항아리도 골목길에 앉아 호박을 매달고 아기 목욕통도 풋고추를 매달곤 했다. 저녁이면 찌개 냄새 구수하고 아이들 소리 시끄럽던 골목길. 지금은 추울 때라 문이 다들 닫혀있다.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대부분은 선뜻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입시경쟁, 스펙경쟁, 청년실업, 오늘의 현 사회 속에 청춘들이 치러야 할 많은 관문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늙어가는 것, 그것은 한 번으로 족한 축복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엄마도 이 세상에 미련 따위는 두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위대한 일은 열심히 살다가 순리대로 떠나가는 일. 거기다 남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삶이라면 최고의 인생이 될 것이다.
엄마는 사람을 좋아하셨다. 골목에 돗자리를 깔고 전을 부쳐 사람들이랑 나누어 먹기를 좋아하셨다. 꿈속에서도 가끔 보이던 이 골목. 때론 사람보다 그리운 풍경이 있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지나간 청춘을 만났다. 기억을 간직한 골목은 내게 힘을 준다. 난 미소 지으며 골목길을 나왔다. 저만치 눈에 익은 놀이터가 보였다. 나는 오랜 친구를 만나듯 그네에 앉았다. 그리고 옛날처럼 흔들, 발을 굴러 보았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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