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게 사람이다
無惻隱之心 非人也(무측은지심 비인야)
- 《맹자(孟子)》 중에서"
공자가 가장 강조한 말 중에 하나가 인(仁)이다. 그렇다면 인(仁)은 무엇일까. 공자와 그 제자들이 나누었던 대화와 공자의 행적을 기록하여 정리한 책 ‘논어(論語)’를 살펴보는 게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논어(論語)’를 뒤져보아도 인(仁)에 대한 정의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인(仁)에 대한 설명이 ‘그때 그때 달라요.’였기 때문이다.
중궁(仲弓)이 인(仁)에 대해 물었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을 중요한 손님처럼 대하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정성을 다하며,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게 인(仁)이다.”라고 대답했으며, 안연(顔淵)이 물었을 때에는 “사사로운 욕심을 이겨내고 바른 예(禮)로 돌아오는 것(극기복례(克己復禮))이다.”라고 대답했다.
왜 이렇게 다르게 표현했을까.
공자에게는 3000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식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방식이 아니었다. 커다란 강의실에 그들을 앉혀놓고 하는 일방적인 강의는 거의 없었다. 공자는 홀로 공부하고 책 읽고 사색에 잠길 뿐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찾아와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그것에 대답해주는 게 교육의 전부였다. 대부분 1:1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거나 기껏해야 4~5명이 모여 앉는 게 전부였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상대에 따라, 그리고 그날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에 따라 이야기하는 방식이나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눈높이와 그날의 주제에 어울리는 맞춤형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게다가 ‘인(仁)은 무엇이다.’라고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지도 않았다. 공자가 인(仁)에 대해 정밀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仁)은 고정된 하나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자의 학문을 이어받은 맹자도 마찬가지였다. 맹자는 “위험에 처한 어린아이를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서 달려가 구해주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깊이 생각하여 내리는 판단도 아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감각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누구나 본래 지니고 있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측은지심’이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 이러한 ‘측은지심’이 바로 인(仁)의 씨앗이다.”라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설명이지만 여전히 인(仁)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불투명하다.
그런데 이처럼 인(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해 답답했던 사람은 우리들뿐만이 아니었다. 공자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수시로 공자의 집 문턱을 넘나들며 “인(仁)이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또 물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애매모호한 인(仁)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을 해낸 사람은 송나라의 학자 정호(程顥, 1032~1085)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의학 책을 보면, 손발이 마비되는 병을 가리켜 ‘불인(不仁)’이라고 말한다. ‘인(仁)’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처럼 적절한 표현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손발이 마비되면 손에서 피가 흘러도 발에 문제가 생겨도 이를 깨닫지 못한다. 그것이 불인(不仁)이라면 인(仁)은 무엇인가.
예민하게 느끼는 것이다. 신발에 작은 모래알 하나가 들어가도 불편함을 느낀다. 손톱 밑에 작은 가시가 박혀도 깜짝 놀라며, 고통스럽게 생각하며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더 넓혀서 생각해보자. 부모의 불편한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항상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적절히 대응한다. 친구들은 물론 이웃에게도 그렇게 대한다. 얼굴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대한다.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굶어죽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도 마치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안쓰럽고 고통스럽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인(仁)은 소통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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