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15 격주간 제773호>
[이달의 착한여행] 고독한 영혼을 위로하며 어루만지는 - 한강 -
서울이란 문명의 정글 속을 구불거리며 흘러가는 한강은 고독한 도시인들 곁에서 말없이 위로한다.

산다는 건 흘러가는 것. 나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낯선 동네에 내리는 걸 좋아한다. 사람에게 말을 걸듯 풍경 하나 사진에 담고 오래 바라보는 일. 가보지 않은 동네 뒷골목도 내겐 여행이다. 여행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조촐한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같은 이야기, 그 첫 번째 이야기는 한강이다.
나는 한강변인 당산동에 24년을 살았다. 오래 산 이유는 한강 때문이다. 서울에 한강이 없다는 생각만 해도 고아처럼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얼마나 강을 좋아하는지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내가 죽고 한강이 맑아진다면 난 기꺼이 죽으리라! 해질녘 강으로 나가면 탁 트인 곳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강의 몸내음, 그 내음이 얼마나 좋은지 눈을 감고 코를 벌렁이며 숨을 몰아쉬곤 한다. 강바람은 나를 안다. 강아지처럼 달려와 온몸을 핥는다. 강의 몸에서는 엄마의 앞치마 냄새가 난다. 사람들을 씻기고 먹이는 냄새. 한강은 정신과 의사보다 위대하다. 도시인의 고독한 영혼을 위로하며 어루만져 준다. 한강은 철학자다. 유유히 흘러 바다로 가는 굴곡진 여정을 침묵으로 말해준다. 또한 석양이 지는 한강은 예술이다. 강도 하늘도 당산철교를 덜크덩 거리며 지나가는 전동차도 그 순간만큼은 하나가 되어 붉어진다. 
헝가리의 도나우강, 파리의 세느강, 독일의 라인강, 몽골의 툴강, 나라마다 강이 있지만 내겐 둘도 없는 강이 한강이다. 수없는 물줄기가 합쳐져도 꿰맨 자리 없는 천의무봉, 흘러가지만 늘 그 자리에 가득한 강물, 한강의 스물네 개의 다리는 조명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보라. 두바이에서 유람선을 탄 적 있지만 조명이나 불꽃쇼는 한강이 최고다.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다. 큰돈 들여 멀리 갈 필요가 있겠는가? 
강변을 걷다보면 자전거를 탄 사람, 걷는 사람, 운동기구로 운동하는 사람, 댄스삼매경에 빠진 노인도 있다. 품 안에 여자가 있는 듯 팔을 벌리고 박자를 맞추며 빙빙 도는 모습은 강이 창조한 자유로운 풍경이다. 강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가끔 풀숲에서 만나는 하얀 토끼, 강을 헤엄치는 천둥오리. 떼 지어 나는 철새, 멸종위기인 큰고니,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강은 생명이라면 빈부귀천 없이 다 품어 키운다.
서울이란 문명의 정글 속을 구불거리며 흘러가는 한강. 사랑이란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아닐까? 고혈압 환자처럼 헐떡거리는 차와 빽빽한 빌딩들 그 가운데로 시퍼렇게 흐르는 생명줄기가 있어 나는 오늘도 안도하며 산다. 사계절 다 좋지만 특히 겨울강은 톡 쏘는 맛이 청양고추 맛이다. 코트를 입고 머플러를 두르고 먼 여행을 가듯 겨울강으로 가면 외로움이 싹 가신다. 겨울 강물에 동동 떠있는 오리를 보면 심장의 고동이 빨라진다.
태백 검룡소에서 출발해 정선의 조양강, 영월의 동강을 지나 단양, 충주, 여주로 흘러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는 한강. 강은 남과 북이 없다. 머뭇거림 없이 하나가 되어 서해로 흘러간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엔 나도 누군가에게로 흘러들어 가는 한줄기 강물이 되고 싶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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