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예(禮)의 본질이다
愛敬之實 其本也(애경지실 기본야)
- 《주자가례(朱子家禮)》 중에서"
실학(實學)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실학박물관’에 가면 이런 설명을 만날 수 있다.
“실학은 조선후기에 등장한 우리나라 유학(儒學)의 새로운 학풍입니다. 조선후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가기능이 마비되고 국토가 황폐화되었습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조선사회에서는 여러 가지의 개혁을 진행해 농업생산력을 회복하는 한편, 새로운 상업이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학문은 여전히 현실생활과는 동떨어진 성리학(性理學)과 예학(禮學) 속에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학풍을 반성하고 국가의 총체적 개혁과 대외개방을 지향하려는 새로운 학풍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곧 실학(實學)입니다.”
실제 생활에 활용 가능한, 과학적인, 실제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방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실학(實學)이 과연 그런 것일까?
실학(實學)은 허학(虛學)에 대한 상대개념에서 출발했다. 일상생활을 성실하게 유지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게 진짜 학문(實學)이라는 뜻이다. 실학은 도교(道敎)와 불교(佛敎)의 세력이 강해졌을 때 나온 말이다. 도교와 불교는 현실 세계를 부정하며, 헛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학(儒學)은 현실을 포용하며, 성실한 생활을 통해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도학(道學)과 불학(佛學)은 허학(虛學)이고 유학(儒學)은 실학(實學)이 된다.
유학(儒學)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나아간다. 그래서 중(中)을 강조한다. 지나치게 형식만을 강조(禮學)해도, 지나치게 형이상학에만 치우쳐도(性理學) 안 된다. 그 모두가 중(中)을 잃은 것이기 때문이다. 치우치면 허학(虛學)이 된다.
역사는 과거의 일인가? 아니다. 오늘의 일이다. 오늘과 연결되어야 한다. 학문은 이상적인 것인가? 아니다. 오늘 어떻게 살아가는 게 올바른 것인지 알려줘야 학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와 학문은 오늘의 것이지 과거나 미래의 것이 아니다. 실학(實學)도 마찬가지다. 오늘 살아서 숨 쉬는 학문이 바로 실학이다. 게다가 생산 경제에 관한 일, 실업(實業)도 아니다. 실학은 실업학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실학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가톨릭에 우호적이었던 이익과 정약용, 극단적으로 반대했던 안정복과 신후담, 무관심했던 홍대용, 박지원이 함께 묶여져 있다. 여기에 양명학을 내세웠던 정제두, 도교(道敎)의 경전인 ‘도덕경(道德經)’에 주석을 달았던 박세당도 함께 한다. 이들의 학문을 반주자학으로 묶을 수도 없으며 민족주의로 묶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냐? 이들은 유학(儒學)을 반대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유학(儒學)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허학(虛學)에 빠진 유학(儒學)을 실학(實學)으로 돌려세우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흔히 실학자들이 주자학을 반대했다고 알고 있지만 그들이 반대한 것은 예학(禮學)이었다. 예학은 주자가 예법에 대해 정리한 책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근거한다. 그렇기에 ‘예학=주자학’이라는 왜곡된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자는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안 돼!”라고 소리 지르려고 이 책을 만든 게 아니었다. 너무나 복잡한 예법이 활개 치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간단하게 정리하는 의미로 책을 만든 것이다. 그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禮)에는 근본정신과 그것을 드러내는 형식이 존재하는 데,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예(禮)의 본질이다(凡禮有本有文, 愛敬之實, 其本也.).”
주자는 형식에만 얽매이지 말고 상황에 따라 형편에 따라 적절히 하라고 말했다. 시대가 바뀌었고 지역마다 사람들 생각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말했다. 복잡한 절차를 간결하고 합리적으로 만들겠다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우매한 학자들이 주자의 정신은 이해하지 못하고 형식만 받들었던 것이다. 실학(實學)은 새롭게 나타난 학문의 경향이 아니다. 유학(儒學)의 본질일 뿐이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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