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5 격주간 제769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예학(禮學)과 실학(實學)

"시(詩)를 배우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
不學詩 無而言(불학시 무이언)
- 《논어(論語)》 중에서"


공자는 당대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은 직접 가르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가르침을 받도록 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자식을 직접 교육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는 게 그 중 하나다. 자식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렇기에 객관적으로 대하는 게 힘들다. 사사로운 욕심, 사사로운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자도 그런 이유로 직접 교육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자가 지은 ‘소학(小學)’을 보면 “아이가 열 살이 되면 훌륭한 스승을 만나게 해주어야 한다. 이제까지 집안 어른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면, 이제부터는 집안 어른이 아닌 새로운 스승으로부터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게 좋다.”라는 말이 나온다.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혹은 너무나 세세한 일상을 환하게 알고 있기에 교육이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상의 게으른 모습이나 선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면서 ‘너는 그렇게 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올바름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으면서 입으로는 ‘이익보다 올바름을 먼저 추구하라.’라고 말해야 하는 자기모순 때문에 교육이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공자의 아들인 공리(孔鯉)가 별로 영특하지 않아 공자가 가르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좌우지간 이유가 어떠했든 공자의 아들 공리는 공자에게 따로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공자의 제자들 중에는 ‘스승님께서 아들에게는 뭔가 따로 특별한 걸 가르쳐주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진항(陳亢)이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공리에게 슬쩍 다가가 ‘스승님께서 뭔가 특별한 걸 가르쳐주셨을 텐데, 나에게도 좀 알려줄 수 없냐?’고 말했다. 그러자 공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따로 들은 것은 별로 없는데, …생각해보면 딱 두 가지가 있긴 있었다. ‘시(詩)를 배웠느냐?’라고 물으셔서 ‘아직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시(詩)를 배우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不學詩 無而言).’라고 말하신 것과 ‘그럼 예(禮)는 배웠느냐?’라고 또 물으셔서 ‘아직 거기까지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예(禮)를 배우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不學禮 無以立).’라고 말씀하신 게 전부였다.”
이에 대해 주자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시는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만 글자로 표현된다. 사람이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그 마음이 행동과 말을 통해서 밖으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시는 곧 사람과 같다. 시를 보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알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시를 읽으면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잘못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잘못을 지적하더라도 적절한 비유를 통해 부드럽게 하고, 적절한 운율을 통해 부드럽게 한다. 올바른 방향을 말해줄 때에도 강압적이지 않다. 비유를 통해 부드럽게 이끌어준다. 이러한 시의 특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하게, 말을 말답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시를 배운 사람이다.”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시(詩)는 그런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저 마음대로 휘갈기거나 내뱉는 것은 시(詩)가 아니다. 적절하게,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오해하지 않도록, 갈고 다듬고 절차탁마하여 완성된다. 그 과정이 예(禮)다. 진심이 우러나는 것이라면 굳이 형식이 필요하지 않다. 형식이 파괴되더라도 진정성이 흘러넘치면 그게 새로운 형식이 된다. 그것이 예(禮)의 본질이다. 허례허식에 얽매여, 형식에만 맞게 꾸며낸 시(詩)에는 진정성이 없다. 그렇기에 형식에는 들어맞더라도 시(詩)라고 말할 수 없다. 공자와 주자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하라.’고 말했다. 진정성이 흘러넘치면 그게 진정한 예(禮)라고 말했다. 조선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과도하게 빠져든 ‘예학(禮學)’은 예(禮)의 본질을 잊는 잘못을 범했다. 실학(實學)은 지나친 것을 갈아내고 모자란 것을 보충하여 적절하게 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고정된 하나의 틀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부터 그 실학(實學)의 속살을 들여다보자.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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