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01 격주간 제768호>
[이 한 권의 책]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순박한 농민 같은 시인의 즐거운 시 읽기

김 혜 정 지도교사 (신안 안좌고등학교4-H회)

가을이다. 가을하늘에 편지를 쓰고 싶다는 어느 가수의 노래가 입에 붙는다. 가을은 디지털 시대에 잊고 살았던 아날로그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최근 젊은 층에까지 유행하고 하고 있는 ‘세시봉’ 류의 노래는 이 계절에 안성맞춤이다. ‘세시봉’ 혹은 ‘7080’으로 얘기 되어지는 당시의 청년 문화는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상징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겉으로 보여지는 낭만의 이면에는 당시의 정치적 암흑기가 낳은 시대의 질곡 속에서 자유와 정의에 대한 외침이 있었다.
70년대 더욱 급하게 진행된 산업화는 기형적으로 도시를 팽창시켰고 농촌을 젊은이 없는 초고령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행되고 있는 남겨진 농촌의 아픔과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시인 중의 하나가 농촌출신 시인 ‘신경림’ 시인일 것이다. 신경림의 시를 읽으면 농촌의 해체만 느끼는 것이 아니며, 농촌의 해체에 작용하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만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그 농촌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갖게 만든다. 그의 시는 현실의 모순을 표현했지만 그 속에는 시인의 자화상이 숨어 있다.
그런 그가 <목계장터>의 ‘구름’처럼 ‘바람’처럼 전국 곳곳의 시인의 삶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는 책의 여는 글에서 시를 분석하지 않고 그 시의 실체인 시인을 찾아 나선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감정의 확대라 할 수 있는 시를 가장 잘 이해하려면 그 시인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조건 아래서 살았으며, 그 시를 쓸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시사(詩史)에서 고전이 된 시들의 현장을 찾아 나선 것이다. 시인은 이 기행을 통해서 목월의 향토색 짙은 밝은 색깔의 이유를 알게 되었으며, 영랑의 맑은 노래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며 시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스스로 감탄했다고 한다.
시 읽기는 이해 차원에서 쉽지만은 않다. 정서적 읽기를 넘어 좀더 심오한 의미와 철학을 깨닫기 위해서는 시인의 삶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시는 삶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그것이 삶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삶과 동떨어진 시는 결코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는 작고한 시인들을 대상으로 첫 권을 내고 독자들의 요구에 의해 생존 시인을 대상으로 다시 연작을 시작해 합본으로 출간된 책은 <향수>의 이미지 ‘정지용’ 시인에서 시작하여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의 시인 ‘안도현’ 시인에 이른다.
책은 해금되기 전까지 불온 시인으로 그 이름조차도 입에 올릴 수 없었던 정지용을 그의 고향 충북 옥천에서 만난다. 그의 집 앞으로 흐르고 있는 실개천은 정지용의 <향수>를 떠올리기에 충분했고 정지용이 동족상잔의 진흙 밭에서 뒹굴기에 너무 고고하고 도도한 시인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어 익숙한 이름의 시인에서 조금은 우리 학생들에게 낯선 시인의 시들까지 시를 읽어가는 재미가 있고 감동을 주는 책이다.
책은 ‘안도현’ 시인을 찾고 맺는다. 이 가을에 그의 시 ‘은행나무’의 전문을 제시해 본다. ‘산서면사무소 앞 /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가 / 어느날, / 크게 몸을 흔들자 / 은행 알들이 우두두두 쏟아져내렸다. / 그게 너무 보기 좋아서 / 모두들 한참씩 바라보았다.’ 억지로 만들어 쓴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은행나무가 몸을 흔드니까 은행 알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시가 되는 것처럼 삶이 곧 시이고, 오늘이 바로 시가 되는 것 같다.
떨어지는 은행 알처럼 작년에 4-H활동으로 심었던 포트 속의 여리디 여린 것들이 소담스럽게 샛노란 국화 향을 뿜어 내고 있다. 춘한고열의 계절을 이겨내고 이제는 한 둥치의 국화 동산을 만들었다. 몽실몽실하게 덩어리진 소국(小菊)들이 시선을 잡아 끈다. 한 편의 시가 나올 것 같은 날이다.
역사는 정리하고 사회는 정의를 내리며 문학은 역사의 단정함과 사회의 구별됨 속에 감춰진 삶의 진실을 다룬다고 한다. 천국의 색칠을 한 이 가을에 농촌 출신 시인 신경림 시인의 삶을 찾아 그의 시 속의 담긴 삶의 치열성과 진실함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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