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바른 이치를 깨달아 마음을 바르게 하라
格物致知 誠意正心(격물치지 성의정심)
- 《대학(大學)》 중에서"
율곡과 퇴계는 조선시대 학문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율곡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이었으나 퇴계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고 추상적이었다. 어떤 사람은 “율곡은 땅(현실)을, 퇴계는 하늘(이상)을 바라보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율곡은 냉철하면서도 열정적이고 철저했지만 퇴계는 부드럽고 온화했으며 포용력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주자의 학문을 이어받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왜 이토록 달랐을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주자를 만나보자.
주자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죽기 이틀 전까지 수정 보완에 매달렸다는 ‘대학(大學)’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유학(儒學)에서 학문을 배우는 단계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이 그것이다. 먼저 ‘소학’을 익히고, 그 바탕 위에 ‘대학’을 익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학’과 ‘대학’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주자의 설명을 들으면 매우 간단하다. 주자는 ‘대학’을 해설한 ‘대학장구(大學章句)’라는 책의 서문에서 ‘소학’과 ‘대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 여덟 살이 되면 왕의 자식은 물론 일반 서민들의 자식들까지 모두 학교에 가게 된다. 그 학교에서 가르치던 내용을 담은 것이 ‘소학’이다. 그 과정을 거쳐 열다섯 살이 되면 그 중에 뛰어난 학생들만 선발하여 따로 가르치는데 그때 가르치던 내용을 담은 것이 ‘대학’이다.”
‘소학’은 오늘날 초등학교의 기본 교과서 정도의 역할을 한 것이며, ‘대학’은 보다 더 심도 있게 학문을 닦을 때 사용하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로 말하면 대학교 신입생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결국 ‘소학’은 일반교양이고 ‘대학’이 진짜 학문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학문으로 들어가는 문이 ‘대학’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장 중요한 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대학’은 독립된 하나의 책이 아니었다. 본래 49편으로 이루어진 ‘예기(禮記)’에 속해 있는 한 편이었다. 그것을 주자가 독립시켜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에서 주자는 ‘예기’에 있는 ‘대학’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수정을 가한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중간에 새로운 장을 만들고 134자를 자신이 직접 작성하여 집어넣었다. 체제도 새로 만들고 순서를 바꾸기도 했다. 이것은 마치 기독교를 연구하는 어느 학자가 ‘성경’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며 어느 한 부분을 새롭게 직접 써서 집어넣은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주자의 이러한 행동은 이후 많은 학자들에게 논란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사실 유학(儒學)의 경전(經典)들은 대부분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역사시간에 배운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 때문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로 불리는 진(秦)나라(BC 221∼BC 206)는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고 이에 반대하는 유학(儒學)을 탄압했다. 급기야 유학과 관련된 모든 책을 불태웠다. 사적으로 책을 지닌 사람들도 30일 이내에 자진 신고하여 불태우게 했고 만약 그것을 감추고 있다가 적발되면 노예가 되어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다. 학문을 이야기하며 나라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모두 사형에 처했다. BC 191년 한(漢)나라가 ‘금지서적의 소지를 금하는 법’을 폐지할 때까지 20년 가까이 암흑기를 보냈다. 대부분의 유학(儒學) 경전(經典)들이 사라지게 된 원인이다. 몰래 손으로 베껴서 숨겨놓은 것들이나 암기한 것을 나중에 글로 남기기도 했지만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주자가 새롭게 편집한 ‘대학’도 많은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물론 여기서 어떤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주자가 많은 학자들의 비판이 있을 것을 감수하면서 죽기 직전까지 ‘대학’의 새로운 편집에 매달린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게 목적이다. 바로 그 지점에 주자가 중요하게 여긴 것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바른 이치를 깨달아 마음을 바르게 하라.(格物致知 誠意正心)”가 그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다음 편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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