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15 격주간 제765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율곡에게 배우는 공부방법 ④

"늙은 후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네!
老大之後 雖悔 何追(노대지후 수회 하추)
- 《격몽요결(擊蒙要訣)》 중에서"


율곡이 강조한 공부 방법은 매우 단순하고 일반적이다. 왜 그럴까. 우리의 삶 자체가 매우 평범하고 소박하기 때문이다. 삶은 특별하지 않다. 아침이 밝고 낮이 되었다가 다시 어두워지고 또 날이 밝는다. 지루한 반복 자체가 삶이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봄에 싹이 트고 여름에 무성해지며 가을에 씨앗을 맺고 겨울이면 시들어 사라진다. 그러다가 다시 봄이 온다. 신기하고 특별한 것이 설 자리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강물에 배를 띄우고, 강물이 흐르는 반대방향으로 노를 젓는다. 강물은 세상이고 배는 내 몸이며 노를 젓는 사람은 내 마음이다. 배가 움직이는 속도와 강물이 흐르는 속도가 일치하면, 그 배의 좌표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러나 게으름을 피워 노 젓는 것을 설렁설렁하면 배는 순식간에 흘러가 거친 바다로 향한다. 죽음이다. 그러므로 노 젓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무리하게 노를 저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금방 지쳐버려 결국 바다로 돌아가고 만다.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강물의 움직임에 맞게 노를 젓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쉬지도 말고 그렇다고 억지로 힘을 쓰지도 않는다. 배의 위치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내 몸의 근육은 엄청나게 단련된다. 정신력도 강해진다. 그러는 사이에 내가 성장한다. 배와 강물과 바람과 하늘과 육지 사이의 조화로움을 내 몸 하나에 가득 담아낸다. 그것이 학문이다.
쉬지 않고 노를 젓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실천한다. 쉬고 싶다는 생각,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칼로 잘라버린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노를 젓는다. 노 젓는 일 자체에 기쁨을 느끼고 그것을 즐겁게 여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게 된다. 노 젓는 일을 좋아하면 된다.
율곡의 공부 방법은 이처럼 단순하다. 이러한 방법으로 율곡은 아홉 번이나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 율곡은 왜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를 해야 했을까. 한두 번 정도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율곡의 집안은 권력과 거리를 가진 집안이었다. 그래서 가문의 힘으로 벼슬길에 오른다는 것은 어려웠다. 게다가 율곡은 한때 산으로 들어가 절에 머물며 불교공부를 했던 사람이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소문이 나더라도 불교에 몸을 담았다는 경력은 치명적인 단점이 되었다. 결국 그러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율곡은 무력시위를 벌이듯 과거시험을 치렀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으로 그 편견과 차별을 이겨낸 것이다.
그런 율곡이었기에 그를 스승으로 삼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율곡이 생각하는 공부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수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에게 시험 잘 보는 방법을 요구했다. 아홉 번이나 수석을 차지한 것으로 벼슬길에 나서 이름을 떨친 게 율곡이었기에 ‘시험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이나 그때나 시험에 목을 매는 사람들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율곡은 ‘격몽요결’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험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바빠서 다른 것을 공부할 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그저 올바른 삶의 방향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험 준비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 모두가 잘못이다. 올바른 삶을 위한 공부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시험 준비가 되는 것이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연구하는 학자는 없다. 열심히 연구한 학자가 노벨상을 받을 뿐이다. 1등을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니다. 열심히 실력을 쌓은 사람이 1등을 할 뿐이다. 일상생활 자체를 공부라고 생각하며 바르게 살아가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노를 젓는 사람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이유를 대며 특별한 것을 찾는 사람에게 율곡은 이렇게 말한다. “세월은 빠르다. 그렇게 기웃거리기만 하다가는 늙은 후에 남는 게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때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老大之後 雖悔 何追)”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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