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냄새, 흙냄새 그리운 가슴 촉촉하게 적셔주는 만화
이 종 무 지도교사 (울산 홍명고등학교4-H회)
옛날 만화방은 요즘으로 치면 PC방이라고 할까. 이후 그런 만화방들이 쇠락했다. 사회가 변화되고 컴퓨터의 보급으로 만화책 자체가 소외되고 대여점이란 이름으로 연명했다.
다행히 만화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학문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어 대학에 만화학과도 생기고 만화특성화고등학교까지 생기며, 제9의 예술로 사랑을 받고 있다. 만화가 이처럼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문자로만 된 글에 비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시각적으로 구성됐고, 소재가 다양해 독자층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삽 한 자루 달랑 들고’는 기존 책에 쉽게 접근이 어렵거나 천편일률적인 내용만 생각한 독자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만화가가 직접 강화도에 이사하여 시골의 삶, 농민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보고 느낀 정서를 담은 독특한 소재의 만화다. 단순히 전원생활이 아니라 농촌 이웃과의 관계, 그 속에서 피어나는 구수한 사람 냄새가 느껴진다.
도시에 살면서 바쁜 일상 속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떠나온 고향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작가 장진영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만화를 그렸으며,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며 작업을 하고 싶어서 강화도로 이사를 했단다. 한동안 강화도에서 놀며 웃으며 농사를 짓고, 농촌과 자연의 모습을 만화로 그린 농민 만화가다. ‘삽 한 자루 달랑 들고’는 농민 만화가로서의 시작인 셈이다.
삽을 붓 삼아 사는 건달 농부의 만화 에세이 형식의 이 책은 첫 장에 ‘아이들의 고향, 우리들의 고향’으로 시작한다. 강화도로 들어가 아이들의 고향을 만들어 주고자했다고 한다. 시골에서 땀내, 흙내 풍기며 일하는 농민의 삶을 장진영 특유의 수묵화풍 필체로 담담하면서도 때로는 끈끈하게 그려냈다. 2004년 컬러판도 있지만 어쩌면 2000년 흑백판이 더 정감이 간다. 강화도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건달농사를 짓게 되지만 일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당나무 아래 마을 노인들이 뒤통수에 대고 농사꾼은 아무나 하냐고 두런댄다. 경운기는 돈이 없어서 못 사고 제초제는 쓰고 싶지 않아 뿌리지 않는다. 결국 삽 한 자루 달랑 들고 야금야금 깨도 심고 밭도 일구지만 농사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두엄 위에 핀 채송화를 보며 사람의 파란만장한 인생길에 견주기도 하는 예리함도 발견할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답고 우아한 전원생활이 아니다. 만화를 읽다보면 농촌 삶의 애환이 스며들어 있음을 느낀다. 몇 달을 정성들여 키운 작물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 농부의 삶마저 무너져 내리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바라보며 한 숨 쉬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 마음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중년의 남자들은 한번쯤 귀농을 꿈꿨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마음만 먹었지 삽 한 자루 들 수 없는 현실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만다. 언제인가 마누라에게 “직장 퇴직하고 우리 시골에 가서 살면 어떨까요?” 했더니 돌아오는 말은 “혼자 가세요.”였다. 4-H본부, 지방자치단체 혹은 시민단체에서 귀농학교를 열어 매년 도시에서 시골로 귀농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삽 한 자루 달랑 들고’에 나오는 작가도 고뇌와 생활고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지 않는다. 독자가 안타깝게 느껴지도록 구성하고 있다. 이 책의 묘미이기도 하다.
‘삽 한 자루 달랑 들고’의 만화 세계는 리얼리즘이다. 성공은 역경과 번민의 체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다가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고단한 농민들의 일상생활을 관념적으로 비껴서 표현하지도 않는다. 장진영은 만화라는 표현 방법으로 책을 읽는 속도와 담긴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탁월한 식견이 있다. 직접적인 체험이 곧 작품이 됐다. 또한 ‘삽 한 자루 달랑 들고’의 만화 세계는 휴머니즘이다. 농촌생활의 따뜻한 인간미가 발견된다. 사소한 것에서 삶을 발견한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경우가 많이 나온다.
‘삽 한 자루 달랑 들고’는 사실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표현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진솔한 이야기야 말로 꾸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 4-H인들이 읽기에 부족함이 없다.
<장진영 지음 / 행복한만화가게 / 2004년 /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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