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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5 격주간 제7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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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환의 고전산책] 율곡에게 배우는 공부방법 ② |
"먼저 큰 뜻을 품어라
先須大其志(선수대기지)
- 《자경문(自警文)》 중에서"
율곡이 가장 강조한 것은 ‘바른 삶을 살아가겠다고 굳세게 마음을 먹는 것’이다. 스스로를 하찮은 사람이라 여기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바른 공부의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율곡은 이를 ‘입지(立志)’라고 표현한다. 뜻을 세운다는 의미다.
사람은 언제, 그리고 왜 망가지는가. ‘열심히 해봤자 난 안돼.’, ‘나는 함부로 막 살아도 되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갖는 순간, 망가지기 시작한다고 율곡은 말한다. 주변 상황을 탓할 필요가 없다고,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고 율곡은 강조한다. 율곡이 말하는 공부는, 바른 삶은 ‘때문에’에서 시작되지 않고 ‘불구하고’에서 시작된다. ‘난 모자라기 때문에, 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혹은 ‘난 이미 똑똑하니까, 집이 부자니까’ 함부로 살아가도 된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그 사람은 망가진다고 율곡은 강조한다. ‘그 어떠한 상황 속에도 불구하고 난 반드시 멋진 사람이 되겠다.’라고 마음을 먹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실 율곡은 따로 스승을 두지 않고 공부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오로지 어머니인 신사임당 밑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신사임당은 율곡의 어머니이자 엄한 스승이었다. 위대한 멘토였고 청소년기에 율곡이 존경했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다. 율곡의 집안은 잘 나가는 집안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벼슬길에 나선 적이 없었고 아버지인 이원수도 하위관리를 전전했다. 게다가 게을렀다. 아주 잘 나가는 집안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먹고 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던 양반 집안이었기에 그럭저럭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신사임당은 그런 남편에게 열심히 공부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미 게으름이 몸에 배인 이원수에게 아내의 말은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 신사임당 밑에서 학문을 배우고 익힌 이율곡에게 아버지는 무능한 사람으로 비춰졌다.
율곡이 16세 되던 해에 신사임당은 죽었다. 율곡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이끌어주던 유일한 사람이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절대로 재혼하지 않겠다고 어머니 앞에서 맹세했던 아버지는 신사임당이 죽은 후 바로 재혼을 했다. 율곡은 무능한 아버지와 새로운 어머니에게 불만을 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유로 삼아 자신을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다. 요즘 청소년과 다름없이 반항기에 접어든 것이었다. 13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했던 ‘천재 소년’ 율곡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급격하게 흔들렸다. 자신에게 닥친 이 모든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금강산에 있는 어느 절로 들어가고 만다.
조선시대는 유교문화가 지배하던 사회였다. 불교는 억제하고 유교를 받들었다. 그런데 과거시험까지 합격한 선비가 불교에 빠졌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는가.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의 나이 19세 때의 일이다. 절에서 그는 불교 공부에 몰입했다. 그리고 수많은 고승들과 토론하며 학문을 가다듬었다. 방황의 시기는 그의 학문을 더욱 풍성하고 날카롭게 만들어주었다. 게다가 ‘천재 소년’이라는 자만심까지 말끔하게 씻어내 주었다. 그리고 1년 후 산에서 내려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율곡은 단순한 ‘천재 소년’에서 벗어나 단단한 학자가 되어 있었다. 그의 나이 20세 때의 일이다. 그는 스스로 ‘나를 가다듬는 글’을 지어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자경문(自警文)이라 불리는 이 글에서 율곡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 스스로를 존중하여 나를 포기하지 말고, 먼저 큰 뜻을 품고 굳세게 끝까지 나아가라. 마음을 차분하게 안정시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잡다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에 집중하라. 잡다한 생각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잡다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중략)…함부로 눕지 않고, 기대지도 않으며, 낮잠을 자지 않는다. 서두르지도 말고, 그렇다고 게으름도 피우지 않는다. 꾸준히 차근차근 나아가리라.”
율곡은 주변 상황이나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깨닫고, 큰 뜻을 품고 자신 있게 나아가라고 말한다. 율곡은 말한다.
“다른 것은 필요 없다. 스스로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자신감부터 가져라!”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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