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생명을, 스승은 가르침을, 임금은 생활을
父生之, 師敎之, 君食之(부생지, 사교지, 군식지)
- 《소학(小學)》 중에서"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중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게 있다. 임금과 스승, 그리고 아버지는 하나라는 말이다. 임금을 아버지처럼, 스승을 아버지처럼 따르라는 말이다. 이것을 패러디하여 ‘두사부일체’라는 제목의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두’는 조직폭력배의 두목을 뜻한다. 그런데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어디서 근거했는지 파악해보면 이것이 참으로 아리송하다. 공부가 짧은 탓인지 유교의 경전을 아무리 뒤져도 이러한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만 비슷한 내용을 ‘소학(小學)’에서 발견했을 뿐이다. 주자가 엮은 ‘소학(小學)’을 보면 ‘예기(禮記)’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글을 소개하고 있다.
“부모에게 잘못이 있을 경우에는 잘못을 바로잡으라고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조언을 해드려야 한다. 그러나 부모가 끝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부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임금에게 잘못이 있을 경우에는 잘못을 바로잡으라고 드러내놓고 큰 소리로 조언을 해야 한다. 임금이 끝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임금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도 된다. 스승은 또 다르다. 스승과 제자는 학문으로 맺어진 관계이므로 항상 옳은 것이 무엇인지 토론하며 학문을 갈고 닦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잘못이 있으면 서로 토론하여 바로잡는 관계라는 뜻이다.”
결국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서로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원전을 보면 부모는 ‘유은무범(有隱無犯)’이다. 부모에게 잘못이 있으면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은밀하게 바로잡을 수 있도록 조언해 드리지만, 끝내 그 말을 듣지 않더라도 무시하거나 이기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 끝까지 공손한 자세로 조언을 드려야 한다. 임금은 ‘유범무은(有犯無隱)’이다. 부모와 정반대다.
임금에게 잘못이 있을 때에는 은밀하게 할 필요가 없다. 남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조언하고 비판해야 하며 끝내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무시하고 내쫓아도 된다는 뜻이다. 스승은 ‘무범무은(無犯無隱)’이다. 함께 연구하고 서로 바른 길을 가라고 드러내놓고 토론하고 격려하는 관계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무시하거나 반항해서는 안 된다. 서로 엄연히 다르다. 다만 훌륭한 임금, 존경하는 스승일 경우에만 부모처럼 대하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군사부일체가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붙는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말도 의미심장하다.
“세상을 살아가며 잊지 말아야할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부모의 은혜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스승의 은혜다. 나에게 가르침을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임금의 은혜다. 나에게 삶의 터전과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삶을 준 사람에게는 죽음으로 보답하고, 나를 도와준 사람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
원문을 보면 ‘부생지, 사교지, 군식지(父生之, 師敎之, 君食之)’라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부모는 생명을 주신 분이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효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런데 스승은 어떠한가? 내가 배우지 않으면 스승도 없다. 스승과 제자는 내가 하기 나름인 관계다. 내가 배우기로 작정하는 순간 그가 스승이 된다. 스승이 아무리 가르치려 하더라도 내가 배우지 않겠다면 그만이다. 내가 거부하면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선택이다. 임금은 어떠한가? 백성들을 잘 살게 해주면 임금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는 임금이 아니다. 확실한 조건이 붙는다.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필수’, 스승은 ‘나의 선택’, 임금은 그가 스스로 바르게 하면 임금이 되고 바르게 하지 않으면 임금이 아닌 그저 조직폭력배의 두목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므로 임금은 ‘그의 선택’이 된다.
이처럼 명확한 구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함부로 군사부일체를 말하는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뿐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그것이 바로 공부다. 훌륭한 스승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다음 편에서 공부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자.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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