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뚜렷하고 확실한 것이다
莫見乎隱, 莫顯乎微(막현호은 막현호미)
- 《중용(中庸)》 중에서"
서양의 빅뱅이론이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은 1917년, 일반 상대성 이론에 근거하여 “우주는 팽창하지도, 수축하지도 않는다.”는 정적 우주론을 발표했다. 그러나 1929년에 미국의 허블은 은하를 면밀히 관측한 결과, 멀리 떨어진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점점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의미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시작도 파악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것이 빅뱅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과학자들은 신나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137억 년 전, 우주는 하나의 점과 같은 상태였으며, 이 점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우주를 만들었다고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대폭발 직전의 크기는 ‘0’이지만, 그 밀도와 온도는 무한대에 가까웠다고 그들은 부연 설명한다. 대폭발 이후 각종 소립자들이 만들어졌고 양성자와 전자가 결합하여 온갖 것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대폭발 이전의 우주는?’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단지 에너지만 가득한 상태’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일단 우주의 시작만을 염두에 두도록 하자.
이러한 상황에서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이 나타난다. 그는 ‘우리가 공간을 바라볼 때는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생겨나는 가상의 작은 입자들로 가득하다. 에너지 파동은 계속 작은 입자를 생성하며, 모든 입자에는 그에 상응하는 반입자가 존재한다. 하나는 양 에너지를 지니며 다른 하나는 음 에너지를 지닌다.’라고 설명한다. 호킹은 1975년, ‘음 에너지는 블랙홀로 유입되고 양 에너지는 탈출한다.’라고 주장했다가 2004년에 다시 ‘모든 입자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지만 이것이 다시 방출될 수도 있다.’라고 수정했다. 이것을 ‘호킹 복사’라고 부른다. 우리의 흥미를 끄는 점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곳, 블랙홀에서조차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동양의 태극도설(太極圖說)로 돌아와 보자. “우주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텅 비어 있는 상태, 끝이 없는 ‘무극(無極)’의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을 ‘태극(太極)’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양(陽)’이 나타나고 다시 ‘음(陰)’이 나타났다. 이러한 움직임이 반복되며 하늘과 땅을 만들고 우리 인간과 그 문명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이루어지며 새로운 것들을 계속 만들어낸다.”
유사점을 발견해냈는가? 텅 비어 있으나 에너지로 가득한 상태, 텅 비어 있어 ‘무극(無極)’이지만 이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 ‘태극(太極)’이라 부르는 상태. 거기서 음과 양이 나타나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 이것은 중국 송(宋)나라의 학자 주돈이(周敦, 1017 ~ 1073)의 이론이다. 빅뱅이론이 1900년대에 그 기초가 이루어졌다면 동양의 우주론은 이보다 900년 전에 성립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더군다나 서양의 빅뱅이론은 우주를 관측하고 실험하고 계산하여 얻어낸 결과임에 반하여 동양의 이론은 오로지 ‘나 자신’을 살피고 연구하여 얻어낸 결과다. 왜 ‘나 자신’인가. 우주가 만들어질 때의 흔적이 ‘나’에게도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그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다. 왜? ‘나’는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상과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니까. 우주가 하나의 몸이라면 ‘나’는 그 몸을 이루고 있는 신체의 일부분이라고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우주 창조의 원리를 이미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화살이 빗나가면 화살을 쏜 자신을 탓하라”는 말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우주 창조 원리를 지니고 있었던 내가, 살아가며 그것을 잊었기에 화살이 빗나갔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이 말은 단순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 아니다. 우주 창조의 원리에서 출발한 이론이다. 그런데 창조원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중용(中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뚜렷하고 확실한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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