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01 월간 제753호>
매화골 통신 (36) 쉬지 않고 심는 마을
-동제 음복을 하며-    이 동 희 / 소설가

"봄이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벌레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농가도 이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얘기를 썼다. 마을의 얘기를 들은 대로 본 대로 쓰고 싶은 것을 쓴 것이다. 매화골, 매곡(梅谷)의 얘기뿐이 아니고 영동(永同)의 얘기, 도계를 넘어 김천 그리고 다른 곳 얘기도 썼다.
농사짓는 얘기, 농촌 사람들 사는 얘기, 귀농한 사람들 얘기, 죽음에 대한 얘기, 종교 얘기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친 마을 풍경들을 사진을 찍듯이 썼고 사진도 직접 찍어서 올렸다. 여러 장면들이 슬라이드쇼처럼 넘어간다. 그 많은 얘기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이 시골 구석에 왜 사는가 하는 이야기였다. 그 나름대로 이유라고 할까 보람을 가꾸는 방법들이 있었다. 씨를 뿌리고 싹이 나고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거두고 먹고 마시고 나누고 하는 농촌 마을 이야기를 가지고 사람 사는 얘기를 써본 것이다.
김동리의 소설작법에 소설의 주제는 인생의 의미라고 하였다. 무슨 얘기가 되었든 인생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소설이다. 그동안 쓴 여러 가지 얘기들이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서 인생의 의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냥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럴 것인지 모르겠다. 감동이란 쉽게 말해서 눈물이 나고 가슴이 찡하는 것이다. 작가가 이러저러 할 문제가 아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이다. ‘행복의 탐구’이던가, 저자가 마키버라고 그 때 사서 읽을 때 미국 사회학회 회장이었다. 그런 직함이 문제가 아니고 그 속에 평생 잊혀 지지 않는 말이 하나 있다. 행복은 현재에 있지 않고 과거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현재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고 불행하다는 것이다. 과거에 행복한 적이 있었고 미래에 행복해 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산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붙인 것이지만 정말 그런 것 같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되물었을 때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책은 그의 서가를 한참 뒤지면 나올 것이지만 보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그런 얘기는 여러 번 여러 군데에 썼다. 소설에도 쓰고 수필에도 쓰고 강의를 할 때도 썼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그 얘기를 쓰는 것이다. 모두들 시골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한다.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고 무공해 푸성귀가 있지 욕심이야 한이 없지만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바랄 것인가. 그러나 그 자체가 행복은 아니다. 도시보다 농촌 시골이 공해가 적고 행복지수가 높다고는 말할 수 있다. 행복은 욕망이 있는 사람에겐 없다. 도시고 시골이고 그것은 마찬가지고 천국이라 하더라도 그럴 것이다.
그동안 ‘농민문학’지에 연재하여 오던 ‘농민21’을 지난 달 끝을 내었다. 25회 5년 3개월 동안 거기 매달려 있었다. 전에 낸 ‘땅과 흙’에서 하지 못한 얘기들을 썼고 이무영의 ‘농민’ 4부를 쓰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그렇게까지는 되지 못하였고 그 때의 농촌을 생각하며 오늘의 농촌 농민의 이야기를 써본다고 하였다. 지금 농촌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정도라고 하고 최근 귀농인구가 많이 는다고는 하지만 농촌은 역시 불편하고 살기 힘든 곳이며 농민은 아무래도 꾀죄죄하고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농촌을 개혁하겠다고 작정하고 웃통을 벗어던지고 두뇌를 집합시켜 밀어붙이고 있는 이야기를 통하여 농촌 농민의 다른 면을 그려보려 한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위기가 기회이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 불가능은 없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뭐 그런 식의 얘기가 아니고 될 수 있는 확률을 다 집합시키고 안 될 수 있는 요소를 다 제거하면 뭐가 됐든 되는 것이다.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며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가치를 느끼고 누리는 것이 어디서나 보람이 있으며 그런 것이 행복일 것이다.
농촌 농민을 보는 시각이 생각하기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다. 농민이 7%라고 하지만 기차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면 질펀한 농촌 들판이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된다. 여전히 농토는 넓고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산이 얼마나 많고 넓은가. 바다는 얼마나 넓은가.
서울 파고다공원이나 종로4가 종묘 앞 노인들이 모여 한잔에 500원 짜리 커피를 사 마시고 자식 며느리 흉을 늘어놓고 2000원 짜리 국수에 막걸리를 한잔 걸치고 갈지 자 걸음을 하며 지공거사(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가 되는 것보다 무엇을 심고 가꾸고 북을 주고 물을 주고 허리를 펴는 것은 생산적이고 건강에 좋고 신선놀음이다. 그런 시각도 있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다시 정월 대보름이 되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이 마을에서는 열 나흘날 저녁 자정에 동제를 지난다. 600년 수령 동구나무(느티나무) 허리에는 1년 내내 그 동제를 지날 때 매어 놓은 금줄이 그대로 있고 그것을 풀고 다시 제를 지낸다. 금년도 제주는 지난 1월 5일 새로 선출된 박희선 대동회장이다. 시인이다. ‘빈 마을에 뻐꾹새만 운다’ 외 많은 시집을 내었다. 노천리 동구나무 효자문 뒤에 자리 잡은 문화생활관에 밤 10시가 되자 노천리 상 중 하리 이장과 전 이장 노인회 회장 등 유지들이 나와서 제주를 엄호하고 있었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제주와 이장들이 나가 마을 안녕을 비는 동제를 지내고 제물들을 가지고 와서 음복을 하였다. 돼지머리를 썰어서 청주를 한잔씩 하고 백점(백설기)을 뜯어 먹었다. 음복은 귀밝이술이 되고 더위도 팔았다. 밤 대추가 있고 사과 배를 깎아서 썰어 놓았다. 밤은 먹지는 않고 아침에 부름을 깬다고 한 알씩 주머니에 넣는다. 전 회장 이재후는 알이 굵고 좋다고 가져가서 심겠다며 세 알을 넣는다. 그에게 감나무 접을 붙여주어 작년에 2, 30개 땄다. 나이 일흔 다섯, 지금 심어서 언제 딸지 모르지만 심겠다는 것이다.
이튿날 버스를 타러 동구나무 앞으로 가는데 금방 차가 떠난다. 버스가 시간 전에 올 때가 많다. 한 시간 후 버스를 타면 기차를 놓친다. 난감해 하고 있는데 승용차가 발 앞에 선다. 동창인 이문세다. 영동을 간다고 타라는 것이다. 가다가 들은 얘기이다. 고추모를 여섯 봉지를 부었다고 한다. 한 봉지 1000여 주씩 된다고 하였다. 참 많은 양이고 노인이 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뭐가 됐든 이 마을 사람들은 쉬지 않고 심고 있었다.
봄이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모래가 경칩이다. 벌레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농가도 이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정월 대보름 얘기로 시작하여 다시 대보름 얘기로 마친다. 사진은 동제를 지내고 음복을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돼지머리에 청주를 한잔씩 하고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더위를 팔고 있다. 그동안 재미 없는 이야기 끝까지 읽어준 4-H 동지 여러분에게 감사드리고 언제 어디서 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잔을 든다. 건배!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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