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채 원 회원 〈경남 창원 산호초4-H회〉
“채원아, 내 벼는 키가 벌써 32cm다. 네 거는?” 우리 반에서 제일 일찍 학교에 오는 동균이의 벼 자랑이다. 나는 얼른 가방을 던져놓고 우리 농장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8포기의 내 벼가 있다. 벼는 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추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키가 얼마나 자랐지?’ 나는 자로 벼 키도 재어보고 휴대폰으로 인증사진도 찍었다. 우리 교실과 미술실을 지나면 조그마한 베란다가 있다. 그 곳은 우리 4-H회원들의 미니농장이다.
농장 이름은 ‘푸른 꿈 어린이 농장’인데 우리들이 교실보다 더 좋아하는 곳이다. 왜냐하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쑥쑥 자라는 식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거기서는 우리 선생님도 잔소리를 안 하신다.
한 달 전에 그 농장에서 우리 4-H회원들은 벼를 심었다.
우리 할아버지 논에서 보니 벼는 논에서 자라던데 화분에다 벼를 심는다니 참 신기했다. 나는 선생님께서 주신 화분에 흙을 담고 1cm정도 구멍을 파서 볍씨를 심었다. 심을 때 내 기분이 이상했다. 꼭 아기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이 벼 아기가 빨리 싹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은 화분을 담가 두는 물통에 상한선까지 채워주면 된다.
그런데 나는 너무 들뜬 나머지 선생님 설명을 잘 안 들어서 화분에 물을 주는 줄 알고 벼 화분에 물을 부어 주었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아. 큰일 났다!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만약에 싹도 안 나오고 잘 자라지 못하면 어쩌지?’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걱정을 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푸른 꿈 어린이 농장’에 가서 벼를 돌보았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10일쯤 지나자 내 아기 벼가 고개를 내밀고 나왔다. 그 때 나는 소리를 막 지르며 좋아했다. 정말 신기하고 기뻤다.
‘작은 볍씨에서 이렇게 귀여운 아기 벼가 나오다니!’
그 뒤부터는 나는 아침마다 내 벼에게 아침인사를 했다. 벼에게 어머니께 꾸중 들은 이야기도 하고 영어 말하기대회에서 은상을 탄 이야기도 해 주었다.
처음엔 2mm 정도이더니 하루 이틀이 지나자 싹이 점점 커가는 것이 지금은 내 손 한 뼘으로도 모자란다. 나는 내 벼를 돌보는 일이 지겹지 않다. 정말 대견스럽고 귀엽기까지 하다. 어떨 때는 잠자기 전에 내 벼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벼야, 너도 잘 자. 난 너의 주인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우리 엄마처럼 너에게 기대가 크니, 너도 쑥쑥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라고 텔레파시를 보내 보았다. 신기하게도 답장이 왔다.
‘네, 채원엄마! 저도 건강하게 쑥쑥 자랄 테니, 대신 맛있는 것과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해요!’라는 답장이 내 마음속에 전달되었다. 사랑과 관심을 주어야만 식물은 잘 자란다고 선생님께서 잔소리처럼 자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벼에게 어떻게 사랑과 관심을 주지?’ 나는 조금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 여쭤 보기로 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상주에서 평생 농사를 짓고 계신다. 나처럼 볍씨 몇 톨이 아니라 수백만 개의 볍씨로 싹을 틔워 모내기를 하신다. 문득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채원아, 사람은 부지런해야 잘 산다이. 할부지가 농사지을 때 논에 월매나 많이 가는지 아나? 100번도 더 간다이. 그래야 나락들이 잘 자라거든. 쌀 미(米) 자는 농부가 논에 88번도 더 간다는 말인 기라. 알것나?” 할아버지는 내 손바닥에 쌀 미자를 써 주셨다.
그 때 간지럽기도 했지만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또 이것저것 벼에 대해 설명도 해 주셨다. 나는 그 때 우리 할아버지가 벼 박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나도 학교에서 벼를 키운다고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무척 놀라셨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고도 하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할아버지 논에는 물이 맑아서 논바닥이 다 보이던데 내 화분에는 초록색 이끼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 되었다. ‘혹시나 내 벼가 썩지는 않을까?’
나는 할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할아버지도 걱정을 하시면서 미꾸라지는 밖으로 튀어나가서 안되고… 우렁이를 넣어보면 좋을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렁이를 어디서 구하지? 시냇가에 사는 것도 아니고 논에 잡으러 갈까? 어디로…? 마침 지난 주말에 가족과 부산에 다녀오는 길에 눈에 띄는 푯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글자가 조금 틀렸지만‘우렁이 팝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부모님을 졸라 우렁이농장을 찾아 올라갔다. 그 곳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우렁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벼 화분에 넣을 거라고 하니 농장 주인은 친절하게 우렁이농법을 설명해 주셨다. 나는 무슨 말인지는 잘 못 알아들었지만 녹색이끼를 먹어치운다는 우렁이가 벌써 고마웠다.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니 화분 하나에 3~4마리 정도만 넣으라고 하셨다. 또 할아버지께서는 “아이구, 우리 이쁜이 손녀도 농사꾼 다 됐네!”하시며 껄껄껄 웃으셨다. 이제 30.5cm나 자란 내 벼도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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