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하구는 철새들이 월동하는 서식지이자 중간기착지의 중요한 길목이다.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을 출발한 큰기러기는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서산 천수만과 금강하구, 우포늪, 주남저수지까지 날아가거나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3월이 되면 한강하구에 다시 모여 번식지인 러시아와 중국으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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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 홍도평야의 재두루미 (곽경근 사진작가 제공)> |
한강하구는 우리나라 유일의 자연하구다.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검독수리, 흰꼬리수리를 비롯하여 재두루미·큰기러기 등 조류 16종과 맹꽁이 등 양서류, 녹색식물인 매화마름 등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환경부는 2006년 4월 한강하구 습지 6만668㎢(1천835만평)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고양시 관할 장항습지와 산남습지, 김포시 관내 시암리습지와 유도를 포함하여 국내 최대규모의 내륙습지보전지역이 됐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매립 등 개발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한강하구지역은 풍부한 자연자원의 보고로 보존의 가치가 매우 높다”면서 한강습지의 경제적·환경적 가치는 연간 최고 7천억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특히 한강하구는 경기도 파주시와 강원도 철원군과 함께 천연기념물 재두루미의 ‘낙원’이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한강하구 갯벌의 다양한 수생생태계와 비무장지대(DMZ)로 형성된 안전한 잠자리, 샛강의 수초와 추수가 끝난 평야지대의 낙 곡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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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한강하구의 청둥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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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 일대에는 2천개체 이상의 재두루미가 겨울을 나기 위해 김포 홍도평야를 찾아왔으나 서식환경의 훼손으로 현재는 100개체 미만으로 크게 줄었다. 1998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김포시 우회도로가 홍도평야를 가로지르고 소규모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재두루미들에겐 더 이상 낙원이 아니다.
재두루미가 번식지인 러시아 힝간스키 자연보호구역에서 김포까지 2천여㎞를 날아오지만 ‘낙원’은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서식 환경의 악화로 월동지가 아닌 중간 경유지로만 이용하는 재두루미가 부쩍 늘어났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표식 발 가락지를 통한 연구 결과 재두루미 상당수가 김포에서 휴식을 취한 뒤 일본 가고시마현(縣) 이즈미시(市)에서 겨울을 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긴 비행을 할 여력이 없는 재두루미만 이곳에 남아 월동한다.
재두루미는 잠자리와 먹이터를 좀처럼 바꾸지 않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한강하구에서 겨울을 지내는 재두루미들은 고양시 장항습지에서 잠을 자고 김포 홍도평야 일대에서 먹이를 찾으며 활동한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벼 그루터기 사이에서 낙곡을 찾거나 얕은 물에서 자라는 매자기 뿌리를 찾다가 인기척이 나면 한강 쪽으로 날아간다.
지금처럼 개발이 계속되면 10년 뒤에는 김포에서 재두루미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주민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이곳에서 재두루미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이 준 축복”이라며 낙곡을 남기고 먹이를 뿌리는가하면, 또다른 한편에서는 “철새 때문에 개발이 제한됐다”며 재두루미를 보호하면서도 지역주민이 함께 살 수 있는 해법이 필요하다는 주민들도 있다.
환경부는 생태계 보전을 위해 지자체장과 지역주민들이 생태계 보전계약을 체결하고 계약 이행에 따른 손실을 지자체가 실비로 보상하는 ‘생물다양성 계약제도’를 확대,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금슬’ 좋은 재두루미들이더 이상 일본으로 보금자리를 옮기지 않도록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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