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01 월간 제748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황희의 어릴 적 이름 ‘도야지’, 고종의 어릴 적 이름 ‘개똥이’

조선 제8대 왕 예종이 13세에 장가를 들어 아들을 낳았다. 이 소식을 듣고 예종의 어머니인 윤대비가 기가 차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13세에 아들을 낳았다? 그게 어디 사람이겠느냐? 똥이겠지.”
이리하여 갓 태어난 왕자의 어릴 적 이름은 ‘똥’이 되었다.
‘똥’자 붙은 사람의 이름은 또 있었다. 제26대 고종의 어릴 적 이름은 개똥이였다. 개똥은 ‘똥’자에다 ‘개’자까지 붙었으니 아주 천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천명위복(賤名爲福)’이라고 해서 천한 이름을 지어야 아이가 복을 받고 오래 산다고 생각했다. 천한 이름을 지어 불러야 귀신이 범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난 집안이나 자식이 귀한 집에서는 어릴 적 이름을 일부러 서당개, 검둥개, 개불이, 똥강생이로 하였다. 명재상인 황희의 어릴 적 이름은 도야지인데, 요즘도 장수 황씨 집성촌에서는 어릴 적 부르는 이름을 도야지로 짓는 집이 많이 있다고 한다.
어릴 적 이름은 장가들어 어른이 되면 사라지고 정식 이름을 얻게 된다. 그런데 양반들은 정식 이름인 관명(冠名) 말고도 ‘자(字)’, ‘호(號)’ 등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다. ‘자’는 장가들어 얻는 이름이고, ‘호’는 자기가 짓거나 남이 지어 주어 늘상 부르는 이름이다. 그 밖에 또 갖게 되는 이름은 글 쓸 때 쓰는 필명, 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내리는 시호, 집이 있는 곳이나 혼인에 의해 붙는 택호 등이 있다.
조선 시대에 양반들은 이처럼 이름을 중요하게 여겨 여러 개의 이름을 가졌지만, 여자들은 어릴 적 이름 말고는 따로 이름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 자기 이름을 갖는 여자는 여류 문인이나 기생 정도였다. 남존여비의 조선 사회에서는 여자는 족보에도 이름이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집가서는 그저 ‘제천 댁’, ‘김 서방 댁’, ‘개똥이 어머니’ 등으로 불릴 따름이었다.
조선 시대에 천민은 성이 따로 없는 대신 이름은 있었다. 대부분 태어난 장소나 태어난 해 혹은 날짜, 생김새·성격을 따서 짓거나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지은 이름이었다. 태어난 장소를 따서 지은 이름은 마당쇠, 부엌손, 사랑, 골목쇠, 서당개 등이고, 태어난 해나 날짜를 따서 지은 이름은 갑돌이, 병길이, 을순이, 보름이, 설아, 단오 등이다. 그리고 생김새를 따서 지은 이름은 육손이, 키다리, 장다리, 납작이, 점박이, 오목이, 성격을 따서 지은 이름은 억척이, 모질이, 어진이 등이고,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지은 이름은 죽지만 말라고 죽지만, 딸을 그만 낳으라고 딸고만, 나중에는 아들이 나와 달라고 내중 등이 있다.
노비는 사람대접을 못 받아 짐승 이름이 많았다. 까마귀, 송사리, 강아지, 삽사리, 호랑이, 조음지(쥐) 등이 흔히 불리는 이름이었다.
한편, 이름에도 예절이 따라, 웃어른의 이름을 댈 때는 감히 직접 부르지 못했다. 그래서 “홍길동입니다.” 하지 않고 “‘길’자, ‘동’자입니다.” 하고 이름자를 낱낱이 풀어서 말했다. 또한 조상의 이름이 담긴 글자는 후손이 절대로 쓰지 못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뜻이 비슷한 다른 글자로 돌려썼다.
철종 때 안동에서 올라온 젊은 선비는 과거에 장원 급제했는데도 그것을 물리친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 이름이 원섭(元燮)인데, 장원(壯元)에 할아버지 이름자인 ‘원(元)’자가 들어 있다고 말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웃어른의 이름을 얼마나 철저히 피했는지 알게 해 주는 이야기이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옛날 사람들은 이름이 운명을 좌우하다고 믿었다면서요?

옛날 사람들은 그 사람의 생김새나 성격을 따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이름 가운데는 푸스코(뚱뚱한 사람)ㆍ에우에르게테스(어진 사람), 고대 로마 사람들의 이름 가운데는 셀레르(날쌘 사람)ㆍ술라(여드름이 많은 사람)ㆍ루푸스(빨간 머리를 한 사람)ㆍ니케르(피부가 검은 사람)ㆍ클라우두스(절름발이)ㆍ카에쿠스(장님) 등이 있었다.
몽골 사람들의 경우는 13세기에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가 몽골에 퍼지면서 쟘바(자비의 신)ㆍ마이달(행복의 신) 같은 종교적 이름이 나타났지만, 그 이전부터 몽골 전통에 따라 몽골식 기상이 느껴지는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몽골 사람들의 이름 가운데는 아주 색다른 이름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훈비쉬(사람이 아니다)ㆍ바스비쉬(또 아니다)ㆍ우드벌이(오래 있다가 나오너라)ㆍ네르귀(이름 없음)ㆍ아르붕 징(5킬로그램)ㆍ터머르 토고(철그릇) 같은 이름도 있었다.
바스비쉬는 아들을 바라는 집에서 지은 이름이고, 아르붕 징은 산모가 자꾸 아이를 유산하니까 건강한 아이를 낳아 잘 기르겠다는 바람을 담은 이름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름이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고대 로마 사람들은 이름이 좋은 사람을 먼저 전쟁터에 내보냈다.
카이사르는 아무 경험도 없는 스키피오라는 부하를 장수로 뽑았는데 이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스키피오는 이름값을 했는지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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