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01 월간 제748호>
[제12회 전국4-H회원 사이버백일장 대상 수상작] 할아버지, 할머니의 환한 미소
채슬기 회원 〈충남 공주 정안중학교 3학년〉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되는 일이 있을 때에는 전 친구나 선생님에게가 아닌 자연에게 제 근심과 고민을 털어놓곤 합니다, 자연은 묵묵히 들어줍니다. 그리고 말 대신 몸짓으로 조언을 해줍니다. 산의 듬직한 어깨가 저에게 용기를 주고, 나무의 넓은 그늘이 용서하는 법을 알려주며, 새들의 지저귐이 저에게 희망의 노래를 선사해 주는 곳에서 자연과 소통하고, 자연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는 16살 시골 토박이 소녀랍니다. 매일 아침 내 알람시계가 되어주었던 익숙한 덜덜덜덜 경운기 소리가 뜸해졌다는 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한가로워지셨다는 뜻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조금은 한가로워지실 때 쯤 저는 시험 준비로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매일 아침 맞이하는 시골의 상쾌한 공기와 새들의 아름다운 합창과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열심히 일하러 가시는 모습은 저에게 무엇보다 큰 응원이 되어줍니다.
농촌에 살다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라기 때문에 모르는 사이에 닮아가곤 합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늦잠 자고 학교에 매번 지각하는 학생이었는데, 어느새 농촌 생활이 저의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 시간에 한번 꼴로 있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있는 힘껏 정류장으로 내달려야 하는 건 저에게 익숙한 일입니다. 녹색의 옷을 입은 논밭사이로 난 길을 달리면서, 매일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시는 한 할머니를 만납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늘도 일 나오셨네요.”
“그래, 학교 가는구나. 잘 다녀 오거라.”
이 한마디의 짧은 인사가 저에겐 하루를 힘차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저처럼 그 할머니께도 원동력이 되어 주진 않을까요?
한 달에 한번 마음이 푸근해지는 하루가 있습니다. 그 날은 셋째 주 토요일입니다
왜냐하면 봉사활동 가는 날이기 때문이죠. 4-H 활동의 일부분인 봉사활동이 저에겐 너무나도 소중하고, 값진 시간들입니다.
1학년 때만 해도, 귀찮고, 봉사시간만 채우기 위해 억지로 하던 봉사활동이었는데, 이제는 하루 봉사활동을 하고나면 한 달이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광정 노인 회관에는 반장 할머니를 비롯하여 여러 할머니께서 계십니다. 할머니와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같이 먹습니다.
소풍갈 때만 먹는 김밥을 만들어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 김밥을 만들면서 하신 한 할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껏 내 자식들을 위해 김밥을 싸봤지, 언제 내 자신을 위해 김밥을 싸본 적이 있었나!”
그 말을 하신 할머니의 주름진 눈가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듯 붉어졌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희 외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저희 외할머니도 저를 위해 김밥을 싸셨습니다.
저희 엄마께선 아프시기 때문에 초등학생 6학년 때까지 소풍을 간다면, 이른 새벽 할머니께서 김밥을 싸가지고, 할아버지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갖고 오십니다. 저에겐 유치원 때부터 익숙했던 일이라,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지 한번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김밥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위해 김밥을 싸드리는 손녀가 될 것입니다.
할머니의 말씀에 공감이 가면서 더욱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청소도 하고, 먼지도 닦아내며 할머니의 손녀처럼 학교생활 이야기도 나누면서 오순도순 즐겁게 지냅니다. 할머니와 지내면서 외가댁만 가면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을 봉사활동 하면서 느꼈습니다. 그것은 농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마음이죠.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해드리는 안마는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해진 할머니의 등과 어깨는 마비가 된 듯 세게 눌러도 아프시단 말씀도 없으십니다. 그저 고마움에 미소만 지으실 뿐…. 그런 할머니의 미소는 제 가슴을 울립니다.
시골 할머니의 강인함은 꽃다운 나이에 시집오셔서,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호미 들고, 일하신 세월동안 남몰래 눈물을 흘리시면서 더 억척스러워지셨는지도 모릅니다.
농촌 생활이 너무나 고된걸 아시는 부모님들은 외로움을 뒤로한 채 자식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 모두 도시로 떠나보냅니다. 이 점이 농촌에서 살면서 제일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 그래서인지 논밭에서 일하시는 사람들을 둘러보아도 일하는 젊은이는 본적이 드뭅니다.
저희 집 옆집에도 노인부부께서 사십니다.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전국의 농촌지역에서 안고 있는 숙제입니다. 우리들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농산물은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의 땀방울이고, 정성입니다. 그 땀방울은 모두 우리의 건강이고 생명이죠. 이렇듯 우리의 생명인 농업을 이끌어 나갈 ‘꿈’ 있는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귀농하여, 봄에는 논에 꿈을 심고, 가을에는 그 꿈을 수확하는 젊은 농부의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반짝거리는 구두대신 흙투성이인 장화를 신고, 반듯한 아스팔트대신 구불구불 황톳길을 달리는 그런 모습, 경운기 위에 할아버지 대신 젊은 사람이 두 손으로 힘차게 이끄는 모습을 말입니다.
“슬기야, 휴대폰 전화번호 입력하는 건 어떻게 하니?”
항상 외가댁을 가면 듣게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소리입니다. 저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같이 휴대폰에 문제가 있으면, 제가 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처럼 농촌에는 시대에 쫓아가지 못하시는 어르신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농촌에 든든한 기둥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봉사활동에 다녀보면, 제대로 된 공연 한 번 못 보신 할머니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지만, 이야기를 같이 나누다보면 이런 말씀을 종종 듣곤 합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 나이 60이 넘을 때까지, 오로지 고된 농사일과 자식들을 위해 바쳐온 내 인생이 너무나도 한심하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농촌에는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농촌으로 공연을 와 어르신들께서 어깨가 들썩이는 흥겨운 공연을 즐기실 수 있다면 그동안 인생에 대한 보답이 되지는 않을까요?
재미있는 문화생활을 즐기시면서 제 2의 인생을 살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이런 모든 농촌의 변화가 농촌에 대한 작은 사랑과 관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도시인들이 농촌을 기피하지 않고, 관심을 가져준다면 분명 농촌은 더욱 살기 좋고, 어르신들의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유쾌한 공간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보기조차 힘든 어르신들의 하회탈 같은 환한 웃음을 꼭 보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매일 밝은 아침이 찾아오듯 농촌에도 지속된 관심을 통한 색다른 변화로 밝은 미래가 찾아오기를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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