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1 월간 제747호>
매화골 통신 (30) 이상 기후 현상이 심해졌다
-유난히 덥고 비도 많이 오고-     이 동 희 / 소설가

"무언가 의문이 자꾸 생긴다.
꽃이란 무엇인가, 열매란 무엇이며,
흙이란 무엇인가."

좀 늦게 심은 옥수수가 훌쩍 사람 키보다 크게 자랐다.
붉은 수염을 드리우고 알맹이가 많이 들었다. 가꾸지를 않아 열매가 충실하지는 않은 대로 올해의 첫 수확이 된다. 수량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아직 따지 않았는데 지금 알이 채 들지 않은 것도 있어 그것이 다 익자면 한참 있어야 될 것 같다.
작년에는 아이들이 와서 같이 따서 옥수수파티를 하였는데 금년에는 벌써 다녀갔다. 여기 와서 물한리도 오르내리며 며칠 피서를 하고 갔다. 나의 옥수수 농사란 같이 한번 따서 쪄 먹는 것이 전부다. 팔뚝만 한 것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알이 시원찮아서 여러 채반을 땄는데 몇 겹 껍질 속의 알맹이는 해참하다. 그런대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손자 손녀에게는 산교육이 되었다.
“옥수수수염만큼 알맹이가 백인다는 것이 맞아요?”
어디서 들은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너무 신기한 모양이다. 그도 더 아는 것은 없다. 같은 자리에서 듣고 정말 그런가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옥수수차 하고 옥수수수염차는 어떻게 달라요?”
그것도 그가 대답할 수가 없어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할머니도 대답을 못 하겠는지 백과사전을 찾아보라고 한다.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찾아보겠다고 하였다. 도로 아이가 돼서인가, 모르는 것이 많아졌다. 그저 씨 뿌리고 거름 주고 풀 뽑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무언가 의문이 자꾸 생긴다. 꽃이란 무엇인가, 수염이란 무엇이고 열매란 무엇이며, 흙이란 무엇인가.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연일 35도를 오르내리고 열대야가 계속되더니 또 비가 많이 왔다. 소나기가 200mm, 300mm 퍼부어대고 침수가 되고 벼가 쓸려나가고 태풍이 불고 하였다. 아무래도 기후 변화가 심해졌다. 이상기후다.
매년 8월 첫째 일요일은 집안 계초가 있는 날이다. 사위들이 주축이 되어 서랑회라고 하더니 친인척 서랑 친족회라고 하여 여러 군데 흩어져 사는 각자의 집에서 하기도 하고 어디 경치 좋은 곳을 택하여 하기도 하고, 그해 맡은 집에서 선택하여 잔치를 한다. 그의 집에서도 두 번 했다. 이사 온 시골집에서도 한번 했다. 작년에는 버스를 대절하여 거제도로 해서 외도 통영을 다녀왔는데 그는 바빠서 참석하지 못하였다.
금년에도 몸을 뺄 수가 없었지만 참석을 하기로 했다. 도무지 뭐가 그리 바쁜지 모르겠다. 변 서방 집에서 한다고 해서 가기로 한 것이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다. 변 서방은 서울에 살고 있었다. 옛날 뒷집에 살던 질녀 광월이 신랑이다. 이제 기억이 희미한데 아이를 낳았을 때 광주리에 담아서 시렁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아이에게 좋으라고, 무병장수라든지, 그렇게 하였는지 모르지만 남동생을 낳으라고 그랬던 것 같다. 그 위로 재숙이가 있고 딸이 둘인데 아들을 낳으라고 말이다. 좌우간 그러나 남동생은 보지 못하였고 어머니가 죽고 재취로 온 계모에게서 재은이가 났다. 재숙이는 오래 전에 죽고 얼마 전 재은이도 죽었다. 그의 집안 종손이었다.
이웃에 사는 조카 재후와 같이 아침 7시 52분 기차를 타기 위해 황간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재후는 광월이 아버지 기형이 그의 큰할아버지 아들로 양자를 오기 전에 3촌이며 광월이와는 4촌간이다. 기형이는 그와 4촌이 되었는데, 사후(死後) 양자(족보상으로만의 양자)를 백골양자라고 한다. 영동에서는 재후의 동생 재영이 내외가 탔다.
서울역에 변 서방이 마중을 나왔다. 아들이 차를 몰고 온 것이다. 변 서방은 종암동에 살았다. 내려서 전철을 타고 가면 되는 것인데 시골사람들에 대한 대접이었다. 그런 예의를 달리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뒤에 네 사람이 타고 앞 자리에 변 서방이 탔다. 흑색의 큼지막한 승용차는 냉방이 시원하게 되어 있었고 안락하였다.
차는 일요일이어서 잘 빠졌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빠른 길을 찾아가 금방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집 근처의 논두렁오리마을이라는 음식점이었다. 널찍하고 시원한 공간이었다. 여간 넓은 집이어서는 한 자리에 다 앉기가 힘든 인원이었다. 즉석에서 고기를 맛깔스럽게 구워대기도 힘들 것이고, 그 많은 일손을 대기도 힘들었다. 그래 언제부턴가 이렇게 음식점에서 했다.
시간이 되자 다들 모였다. 우리는 영동에서 왔고 대구서도 기차를 타고 왔다. 재현이 재백이 남매는 승용차를 몰고 나타나곤 하는데 오늘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왔고 그러느라고 30분 이상 늦었다. 모두들 기다리지 않고 먼저 고기를 굽고 술을 시켜 들기 시작했다. 오리를 양념한 것이 있고 소금구이가 있었다. 골고루 먹었다. 회비로 하는 것이니 마구 시켜서 양껏 먹었다.
성남에 사는 재희 김 서방 내외 영순이 영자 재하 남매 마포에 사는 영애 배 서방 내외도 오고. 제주에 있는 재인이는 보이지 않는다. 화수회와 달라서 여기서는 그가 항렬이 제일 높아 전부 아저씨 할아버지 한다. 그러나 처음에 인사할 때만 그러고 음식이 들어오고 술판이 벌어지면 그런 아래위턱은 없어지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댄다. 음식을 먹으면서 대략 올 사람이 다 오면 만년 총무인 재하가 일어나 회의를 진행한다. 누나인 이영순 회장이 짤막한 인사를 하고 나서 지출에 대해 설명을 하고 결산보고를 한다. 그리고 회비를 거둔다. 금년에는 회비가 7만원이다. 이번 모임에서는 임원개선이 있었는데 재희를 선출하고 뒷자리에서 자고 있는 재희에게 수락을 받았다. 남자들이 다 돌아가고 지난번부터 여자들로 돌아가는 것이다. 박수를 치고 한바탕 웃었다.
변 서방이 술을 한잔 따른다.
“건강하시지요?”
“건강은 모르겠고 뭐 병은 없는 것 같애요.”
그보다 나이가 많아 조카사위지만 경어를 쓴다. 변 서방에게 묻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을 하려 하였는데 여러 사람 앞이라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는데 재후가 먼저 가겠다고 일어선다. 예약한 기차 시간이 다가와서이다. 그래 그도 같이 일어섰다. 밖에서 잠깐 얘기하면 되었다. 모두들 따라 나와 인사들을 하였다.
이무래도 떠나기 전에 한 마디 물어보았다.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제사 잘 지내고 있지?”
광월이에게 물어보았다. 재은이가 죽고 그들에게 부탁을 하였던 것이다.
“예. 절에 모셨어요.”
더 물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걸리라고 생각하였다. 어떻다는 얘기가 아니고 애 쓴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매년 여름 8월 첫째 일요일은 친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점심을 먹으며 이 얘기 저 얘기 환담을 한다.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피붙이들이 집합을 하여 결속을 다지는 것이다. 결혼을 하여 새 식구가 오기도 한다. 혼례 때 장례 때도 다 모인다. 상부상조를 하고 1년에 한 번씩 얼굴을 보는 것이다. 이제 대략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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