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1 월간 제747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정3품 벼슬을 받은 개

고려 제25대 충렬왕 때의 일이다. 1282년 4월에 개경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병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 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개경의 ‘진고개’라는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며칠 만에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죽고 말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마을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너도나도 짐을 꾸려 가족들의 손을 잡고 마을을 떠나 버렸다.

앞 못보는 어린 주인 구해

그런데 마을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앞을 못 보는 어린아이였다. 부모와 친척이 전염병으로 죽어,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이는 방 안에 혼자 남아 울고 있었다.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아이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손을 대 보니 복슬복슬한 털이 만져졌다.
“너, 복실이로구나.”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복실이를 쓰다듬었다.
“어디에 있었니? 그래도 너는 떠나지 않고 마을에 남아 있었구나.”   
아이는 너무 반가워서 복실이를 꼭 껴안았다.
복실이는 아이네 집에서 키우던 개였다. 부모가 죽은 뒤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복실이는 아이의 옷자락을 물어 당겼다.
“왜 그러니? 밖에 나가자구?”
아이는 복실이에게 끌려 밖으로 나왔다. 복실이는 자기 꼬리를 아이 손에 댔다. 아이는 그 꼬리를 잡고 복실이를 따라갔다.
복실이는 텅 빈 마을을 벗어나 어디론가 한참 걸어갔다. 복실이가 아이를 데려간 곳은 이웃 마을이었다. 이웃 마을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염병의 피해가 적어 마을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었다.
복실이는 어디선지 빈 바가지 하나를 얻어 왔다. 그 바가지를 입에 물고 집집마다 동냥을 다니기 시작했다.
바가지를 입에 문 복실이와 그 꼬리를 잡은 아이가 나타나면, 집 주인들은 혀를 끌끌 차며 바가지에 밥을 담아 주었다.

동냥으로 끼니해결

“쯧쯧, 가엾어라! 부모님이 돌아가신 모양이구나. 앞 못 보는 어린 것이 고생이 많구나.”
마을을 한 바퀴 돌자 바가지에 밥이 수북이 담겼다. 아이의 안타까운 상황과 복실이의 기특한 행동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복실이는 아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아이가 식사를 마치자, 그제야 남은 밥을 먹었다.
아이가 목이 마르다고 하자, 복실이는 아이를 우물가로 데려가 주었다. 아이는 시원한 우물물로 목을 축일 수 있었다.
복실이는 아이와 함께 아침저녁으로 이집 저집 동냥을 다녔다. 그리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와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마을은 텅 비어 있었지만 아이는 외롭지 않았다. 복실이가 늘 곁에서 지켜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누가 복실이에 대해 물으면,
“나는 부모에게서 났지만 이 개 덕에 살아갑니다.”
하고 대답하곤 했다.
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무서운 전염병이 수그러들자,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왔다. 사람들은 아이가 마을에 살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는 이제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개가 사람보다 낫네. 앞 못 보는 어린 주인을 헌신적으로 돌보다니.”
이 이야기는 곧 온 나라에 퍼져, 충렬왕은 주인을 돌본 복실이에게 정삼품 벼슬까지 내렸다고 한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고려 시대에는 술 취해 잠들었다가 불에 타 죽을 뻔한 주인을 구한 개도 있었다면서요?”

고려 고종 때의 문신인 최자의 ‘보한집’이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고려 때에는 전라북도 남원을 거령현이라고 불렀는데, 거령현에 김개인이라는 사람이 개 한 마리를 기르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개를 데리고 외출했다가 술을 잔뜩 마셨다. 얼마나 많이 취했는지 집으로 돌아오다가 들판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때 들불이 타들어와 그를 에워쌌다. 그러자 개는 냇물을 들락거리며 꼬리에 물을 묻혀 불을 끄고, 기운이 다하여 쓰러져 죽고 말았다.
주인은 개가 자기를 구하고 죽은 것을 보고는 크게 슬퍼하며, 개를 묻어 주고 그 자리에 지팡이를 꽂았다.
그 뒤 지팡이가 나무로 자라났는데, 개 오(獒)에 나무 수(樹), 즉 개 나무라고 해서 그 곳 지명이 ‘오수’가 되었다.
그 다음부터 사람들은 ‘오수의 개’ 이야기를 하며, 주인을 구하고 죽은 개의 충성심을 높이 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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