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1 월간 제747호>
[4-H인의 필독서] 바르트 무야르트 글, 안나 회그룬드 그림 ‘울타리 너머 아프리카’

마음의 문을 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온통 마음이 뒤숭숭하다. 무엇 때문인가? 이유를 찾자면 날씨 탓이다. 콕 집어 태풍 탓이다.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무서운 바람을 이끌고 와 나라를 뒤흔들었다. 피해도 만만치 않다. 농가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제14호 태풍 ‘덴빈’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자 애를 써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요.”라는 원망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이런 상황이니 원고가 제대로 써질리 없다. 마감이 코앞인데, 계속 딴소리다. 이렇게 울적할 때는 그림책이 제격이다. 최근 읽었던 그림책 한 권을 다시 꺼내들었다. ‘울타리 너머 아프리카’(바르트 무야르트 글, 안나 회그룬드 그림)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난 곳은 어린이 도서관에서였다. 누군가 읽다가 펼쳐놓고 간 책이었다. 서정적인 제목이 마음을 끌었고 다 읽고 난 후에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작가의 시선에 매료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한 남자 어린이다. 이 소년은 네덜란드의 어떤 도시, 연립주택에 살고 있다.
이 연립주택 단지에 사는 사람들은 똑같은 형태의 뒤뜰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여기에 잔디를 심고, 창고 뒤 텃밭에는 꽃양배추를 심어 가꾸며 똑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데 이 연립주택 단지에 특이한 사람이 있었다. 소년의 옆집에 사는 프랑스 말을 하는 아저씨와 그의 아내인 특이한 말을 하는 아줌마다. 그 아줌마는 갈색 피부를 갖고 있었고 이름은 데지레였다.
특이한 말을 하는 아줌마는 뒤뜰에 잔디를 심지 않았고 꽃양배추도 가꾸지 않았다. 그냥 풀이 자라도록 두었다. 그래서 뒤뜰은 잡풀로 가득했다. 아줌마는 의자를 밖으로 꺼내놓고 네 명의 아이들과 풀밭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곤 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비를 맞으며, 풀밭과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 엄청나게 비가 많이 오는 날, 아줌마는 노란 비옷을 입고 콧노래를 부르며 뒤뜰에 있는 창고를 뜯어버린다. 그러자 이웃 사람들은 데지레 아줌마네 창고가 사라진 것에 대해 화를 낸다. 이 상황을 주인공인 소년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데지레 아줌마네 뒤뜰을 보며 손가락질했어. 건물 여덟 채가 똑같이 죽 늘어서 있는 연립주택에서 멋대로 자기 집 창고만 허물어 버리는 일은 벌금을 내야하는 짓이라고 투덜거렸지. 내가 보기에 모두 샘을 내고 있는 거였어. 데지레 아줌마의 뜰이 한층 더 시원스럽게 넓어졌거든. 사실 아줌마가 가장 현명했던 거지.”
창고를 허물어 버린 후 데지레 아줌마는 이상한 방식으로 텃밭을 가꾼다. 텃밭을 가꾼다기보다는 구덩이를 파는 것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구덩이에 진흙을 가져다 붓는다. 그러자 이웃 사람들은 또 화를 낸다. ‘흙이 충분한데, 진흙을 더 덮는 이유가 뭐냐’면서. 하지만 아줌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빠에게 아줌마가 아프리카의 카메룬이라는 나라에서 왔다는 말을 들은 소년은 그 나라가 진짜로 있는 나라가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카메룬’이 ‘캐러멜’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소년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난 책 읽는 시늉만 하다가 곧 눈을 감았어. 방안에 있었지만 카메룬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말이야. 머릿속에서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원숭이가 끽끽거렸어. 동물원에서 듣던 소리와 비슷했지. 하지만 다음에는 어떤 소리가 더 들려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았어. 카메룬에 어떤 동물이 사는지 잘 모르겠더라고. 난 아줌마의 나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거든.”
소년은 데지레 아줌마가 진흙집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년은 아줌마의 초대를 받아 아줌마의 오두막에 놀러간다. 아줌마는 소년에게 카메룬에 계시는 할머니도 똑같은 진흙집이 있고, 할머니는 평생 거기서 사셨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소년이 여기서 살 거냐고 묻자 데지레 아줌마는 깔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가끔가다 이렇게 오면 좋을 것 같아서. 저 집에 사는 게 지겨워지거나 고향이 그리워질 때마다 말이야. 이따금 고향 집에 가고 싶을 때가 있거든. 언제 한 번 거기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 줄게.”
아줌마의 제안에 소년은 ‘좋아요’라고 대답하고, 자기가 ‘사자 흉내를 엄청나게 잘 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필자에게는 이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다. 지금까지 소년에게는 아줌마가, 아줌마에게는 소년이 서로 낯선 세계였다. 이 두 세계가 소통을 통해 진정한 이웃이 되었고 친구가 됐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서로에게 낯선 세계다. 그 낯섦을 받아들이려면 내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야 한다. 그게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누군가에게 다가갈 용기가 필요할 때, 이 책 ‘울타리 너머 아프리카’를 읽어보길 권한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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