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1 월간 제745호>
[특별기고] 4-H와 식량·농업

김 성 수(농촌청소년문화연구소장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의 대학4-H 지도교수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한 후 선배님들께 감사함과 죄송함을 전하는 인사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씁니다.
아울러, 대학4-H 활동 후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대학4-H 선배님들께 경의를 표하고 후배들에게는 축하와 격려를 전하고자 합니다.

백색·녹색혁명 이룬 4-H

저는 해방 몇 달 전 세상에 나와 한국전쟁을 겪었고 모두가 어려웠던 그 시절, ‘쌀밥에 고깃국’을 그리며 산 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H’를 통해 농업·농촌의 발전에 헌신하여 오신 선배님들께서 이룩하신 녹색혁명, 백색혁명의 덕택으로, 쌀 걱정 안 하고 겨울철 푸른 채소까지 배불리 먹고 지낼 수 있었음에 깊은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
선배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도 한편 죄송스러운 것은 선배님들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갈 후학들의 교육 지도에 역부족이었다는 것과, 여전히 식량자급률이 29%를 맴도는 미흡함입니다.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해 열심이신 후배님들, 특히 최일선에서 농촌진흥에 애쓰시는 동문들께는 1997년 농촌지도직의 지방직 전환 이후, 국가가 마땅히 져야할 무거운 짐을 20%대 재정자립도의 지방에 떠넘기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데 대한 죄송함과 함께, 그 어려움 속에서도 농업인들과 함께 국가농업을 지탱해 주심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4-H와 함께하는 인생은 행운

장기적 안목으로 4-H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후배들에게 한 아름 축하와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 4-H와 인연을 맺고, 중학교 1학년 때 농업을 배우며 농대 진학을 결정했는데 그 결심이 흔들리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중·고등학교 동기들의 모임에서 발견한 사실은 환자를 돌보느라 또 범법자들을 수사하느라 동창회에도 나오지 못하는 그들보다 밝은 청년들과 어울려 젊게 살아올 수 있었던 내가 훨씬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동기의 자녀들 결혼식에 주례를 설 수 있었음도 행운이었습니다.
이제 식량과 농업, 대학4-H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아쉬웠던 몇 가지를 반성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4-H 후배들을 위한 덕담으로, 또 미완의 숙제를 물려주면서 건승을 기원하고자 합니다.

식량·농업의 중요성 인식해야

첫째는 식량과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자긍심의 함양을 위한 국가 사회적 분위기의 조성입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데 식량과 농업만큼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은 가장 떳떳한 존재이며, 존경을 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윤봉길 의사는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입니다”라고 식량이 바로 생명임을 강조하셨습니다. 5·16이 준 역설적인 교훈의 하나는 ‘절망과 기아선상의 국민’ 문제는 국방보다 중요함을 입증한 것입니다.

범 국민대상 농업교육 중요

둘째, 유아기부터 초·중·고등학교 대학 교육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함께 받아야 할 식량·농업의 교육입니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밥상머리 교육, 가정교육을 통해 쌀 한 톨의 소중함부터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 이웃 사랑의 정신까지를 행동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다행히 음식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자원의 낭비를 막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목표를 가진 ‘빈그릇 운동’이 점차 확산되며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음식물은 15조원에 이르고, 이를 처리하는 비용만 4000억여 원이 들어간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식량·농업 교육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식량자급률 높여야

셋째, 선진국의 공통적인 특성 중 하나는 식량자급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호주, 프랑스, 미국, 캐나다 등은 100% 이상이며 폴란드, 영국 등도 92% 이상입니다. 우리나라의 29%는 부끄러운 수치이며, 이는 역설적으로 4-H인들이 발전시켜가야 할 일터입니다. FTA보다는 Local Food을 믿으며, 식량자급률을 연차적으로 꾸준히 높여가기 위한 입법과 이를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국가 농업정책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청소년 농업교육프로그램 절실

넷째, 농업계 고등학교 교육의 강화는 물론 중학교와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도 식량 농업의 중요성을 교육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실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후계 농업인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로 진행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농업에 소질이 있는 청소년 중 훌륭한 농업인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도 대다수는 농업 이외의 직업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농업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농업의 가치와 소중함을 아는 건강한 농업소비자, 든든한 농업의 우군이 될 것입니다.
초·중등학교와 대학의 학내외에서 4-H활동과 영농학생회(FFK; Future Farmers of Korea) 등을 통해 나무 심기, 텃밭 가꾸기 등 농심 함양에서 진로 교육까지 통합적 인성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최근 심각하게 대두되는 학교폭력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농대 전문성과 4-H운동 회복해야

다섯째, 농학계 대학들은 최근 십 여 년 동안 학부제, 대학원 중심 대학 등의 미명하에 희생시켜 온 학과의 특성, 전문성, 다양성과 함께 4-H 운동을 회복,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다양한 학과의 학사과정에서부터 교양 교육과 전문 교육의 균형, 아울러 지·덕·노·체를 실천으로 배운 지성인을 육성할 수 있을 때 대학원 교육도 강화될 수 있으며, 전문 분야의 일자리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농업인재 양성 위한 학과 확대돼야

여섯째, 농업생명과학계 대학들이 실험실 내의 생명과학 연구는 물론, 농촌사회의 종합적 발전과 농민복지 향상을 위한 노력으로, 농업정책학과, 농업협동조합학과, 농업행정학과, 농촌지도학과, 농촌여성학과, 농촌노인학과 등을 설치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도 비중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대학확장 교육(University Extension)의 일환으로 농업인을 위한 학내외 교육이 계속되어 농민들에게 유의미한 연구로까지 연결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농업의 사회적 기능 확대

일곱째, 앞으로의 세계는 개발과 보전, 문명과 생태가 상생(相生)을 이루는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이 중요한 화두가 될 것입니다. 농업은 본래 특성인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생명을 창조하는 산업으로서 가치와 중요성이 점차 새롭게 부각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농업이 원천적으로 맡고 있는 식량안보, 국토·환경보전 등 국가적 차원의 역할 뿐 아니라 농촌사회 유지, 도시집중 억제, 농업고용, 노령인구 부양 등 사회적 기능도 계속 증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가는 국민식량을 안정적으로 안전하게 공급하는 생명산업으로 꾸준히 농업을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생명의 원천인 식량을 제공하는 문제를 우리의 자주적 역량으로 해결할 수 없게 된다면 국가 기틀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농업이 미래지향적인 지식산업으로 변모해 감에 따라 새로운 첨단기술과 지식이 끊임없이 창조되고 응용되는 지식농업(knowledge-based agriculture)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4-H인의 역할이자 국가적 과업이 될 것입니다. 농촌은 식량생산의 공간이면서, 국민과 함께 사는 쾌적한 삶의 터전으로 발전될 수 있도록 국가적, 국민적 역량을 동원하는 데 4-H인들이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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