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1 월간 제745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어린이 오줌 부대, 동변군
가뭄이 심했던 어느 해 여름이었다. 몇 달째 비가 내리지 않아 백성들의 가슴은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고 타들어 갔다. 올해 농사를 망치게 생겼다며 모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조정에도 비상이 걸렸다. 가뭄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며 대신들은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다. 비를 내리게 해 달라고 나라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정성이 부족했는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것이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백성들을 죽게 내버려 두실 건가?”
 대신들이 모여 앉아 이렇게 하늘을 원망하고 있을 때 한 대신이 입을 열었다.
“내의원에는 동변군이 있지 않소? 마지막 수단으로 이들을 동원해 비를 내리게 합시다.”
“좋은 생각이오. 당장 이들을 불러 옵시다.”
대신들은 궁중 내의원에 연락하여 동변군을 서대문 밖에 있는 모화관으로 불러들였다. 모화관은 조선 시대에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었다. 동변군은 궁중에서 필요한 오줌을 받기 위해 남자아이들을 모아 만든 부대였다. 아이들의 오줌은 약으로 쓰이기 때문에 내의원에서는 늘 아이들을 대기해 놓고 있었다. 동변군 아이들은 모화관 마당에 죽 늘어섰다. 바지를 벗고 하늘을 향해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오줌 줄기는 힘차게 하늘로 치솟았다. 하늘을 향해 오줌을 누는 것은 하늘에 욕을 하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하면 하늘이 화가 나서, 보복을 하려고 비를 퍼붓는다는 것이다.
옛날 아이들은 길에서 오줌을 누며 오줌 줄기로 이름을 쓰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오줌 멀리 누기와 오래 누기, 오줌발로 아카시아 꽃잎 떨어뜨리기 등의 시합을 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오줌을 놀이의 대상이 아니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경상북도에서는 폐병에는 자신의 오줌이 약이라고 생각했고, 위장병에 걸리면 자식의 오줌을 마셨다고 한다. 또 경기도에서는 장티푸스에 걸리면 오줌에 달걀을 삶아서 먹었고, 중부 지방에서는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 오줌을 담은 병을 대문에 걸어 놓았다. 그렇게 하면 전염병이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오줌은 거름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농촌에서는 사랑방이나 뒷간 근처에 오줌독을 묻어 두고, 온 가족의 오줌을 모을 정도였다. 가족들은 남의 집에서 놀다가도 오줌이 마려우면 집으로 달려와서 오줌독에 오줌을 누었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오줌은 오랫동안 썩혀서 밭에 거름으로 주었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이 하인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날 때는 말고삐를 쥔 하인에게 요강 망태기를 맡겼다. 말을 타고 가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말 위에서 오줌을 누려고 말이다. 시집가는 신부도 요강은 꼭 가마 안에 준비해 두었다. 지금은 요강을 찾아볼 수 없지만, 시골에서는 요즘도 이사할 때 방 안에 요강부터 들여놓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 식구들이 병을 앓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오줌으로 세수를 했다. 중국 문헌인 ‘위서’의 ‘물길전’이나 ‘당서’의 ‘흑수 말갈전’에는 물길인, 흑수 말갈인들이 오줌으로 세수를 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이들은 부여, 고구려에 흡수되어 한민족의 일원이 되었기에 이러한 풍습은 함경도, 강원도 지역에서 고대부터 전해 내려왔다. 8·15 광복 전에는 경상도 김해 지방에도 오줌 세수 풍습이 있었다. 오줌으로 손과 얼굴을 씻으면 피부가 부드러워진다고, 경상도 울진에서는 손발이 텄을 때 오줌에 씻었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벨기에에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오줌싸개 동상이 있다면서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는 오줌싸개 동상이 있는데, 벌거숭이 아이가 빙그레 웃으며 오줌을 누는 모습이다. 이 동상은 브뤼셀 시청 왼쪽에 있는 에티브 거리에 있다. 브뤼셀을 찾는 관광객들은 반드시 둘러보고 가는 세계적인 명물이 되었다. 오줌싸개 동상에는 오줌이 뿜어져 나오는데, 실은 그것이 오줌이 아니라 물이란다. 명절이나 축제일에는 물 대신 맥주를 나오게 해, 관광객들은 입을 벌려 즐겁게 받아 마시기도 한다. 이 오줌싸개 동상은 어떻게 해서 세워지게 되었을까? 그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8세기쯤 브뤼셀을 다스리던 어떤 영주가 결혼한 지 몇 년 되었지만 아들을 낳지 못했다. 영주는 주교에게 아들을 얻도록 하느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하느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영주의 부인이 곧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다.
아기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허공을 향해 오줌을 누었다. 오줌 줄기는 힘차게 하늘로 치솟았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이 아기를 ‘오줌싸개 소년’이라고 불렀다. 영주는 그 기념으로 오줌싸개 조각상을 세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은 스페인 군대의 브뤼셀 함락 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스페인 군대는 철수하기 전에 화약을 설치하여 브뤼셀 전체를 폭파시키려고 했다. 그때 한 소년이 타들어가는 도화선에 오줌을 누어 불을 끈 것이다. 그 소년을 ‘브뤼셀 최고의 시민’으로 선정하고 오줌싸개 동상을 만들었다. 또한 이런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브뤼셀에 프랑스군이 쳐들어왔을 때, 한 소년이 적군을 향해 야유하듯이 오줌을 쌌다는 것이다. 이 소년을 ‘애국 소년’이라 부르며 그를 기리기 위해 오줌싸개 동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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