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1 월간 제744호>
매화골 통신 (27) 인삼씨 여섯 가마 심은 지 10년
- 질골 막장소리 재현하며-    이 동 희 / 소설가

"은단 알보다 작은 인삼 씨알
여섯 가마를 손으로 호미로
경사진 비탈에다 심은 것이다.
그 수량이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귀농에 몇 가지 구분이 있다고 했다. 귀농·귀촌·귀향, 그가 향향(向鄕)을 추가하여 보았다. 아마 통틀어 귀농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귀농의 대명사로 말이다.
요즘 계속 귀농에 대한 얘기가 도하 언론에 많이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귀농 인구가 많아지고 귀농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삶의 형태가 달라지고 질이 달라지고 가치 기준이 달라진 때문이라 생각된다. 공해가 없고 공기가 좋고 인심이 좋은 공간에 머물고자 하는 욕망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어쩌면 시골에 사는 특권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기우가 되길 바란다. 서울이나 도시에서는 밤에 별을 보기가 힘들다. 스모그 속의 희미한 별빛을 볼 뿐이다. 마치 뿌연 연막을 쳐 놓고 보는 것과 같다. 시골에서는 마구 쏟아지는 별 떨기를 확대경으로 보듯이 볼 수 있다. 농사를 짓는 농민은 전 인구의 7∼8%밖에 안 되지만 농촌 지역은 의외로 넓다. 영등포나 청량리를 지나 기차를 타거나 버스 승용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얼마 안 가서 질펀한 농촌 들판을 만날 수 있다. 요즘 모를 다 심어 물을 대어 놓은 무논 수답이 아니라도 보리밭, 포도밭, 채소밭, 야산, 높은 산, 습지 등으로 연철되어 있다.
부상리의 민병제(77세) 씨도 귀농을 한 사람이다. 용산 부상리는 영동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뜨는 마을이다. 부상(扶桑)이란 동쪽 바다의 해 뜨는 곳에 있다고 하는 상상의 나무이다. 심청전에 보면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에 매었으면 하늘같은 우리 부친 더 한 번 보련마는’ 하는 대목이 있다. 여기 질골은 영동군의 전통민속놀이 막장소리의 고장이다.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이 시대 마지막 전통 민속 광부의 노동요를 재현하고 있는 민병제 씨는 10년 전에 산양삼을 330,579㎡, 30여 정보 심었다. 그러니까 방금 귀농을 한 것이 아니고 벌써 오래 전에 이곳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서울에서 많은 돈도 벌어보고 정치판에도 뛰어들어 보았지만 다 부질없는 것을 절감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땅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지역문화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냥 농사가 아니다. 마을 뒤 야산에서부터 저 뒤 높은 산 형석광산이 있는-지금은 물론 폐광-곳 근처까지 인삼 씨 여섯 가마를 심은 것이다. 인삼 여섯 가마가 아니고 그 씨앗 여섯 가마를 심은 것이다. 상상을 해보라. 은단 알보다 작은 씨알 여섯 가마를 기계로도 아니고 손으로 호미로 그것도 경사진 비탈에다 심은 것이다. 그런데 그 수량이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천문학적이라고 하기도 안 어울린다.
“여섯 말이 아니고 말이지요?”
아무래도 믿어지지가 않아 물어보았다.
여섯 말도 많다. 그것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말로 된 것도 아니고 근으로 달아가지고 왔어요.”
민씨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달아요?”
“한 말이 7㎏이에요. 400㎏을 샀으니께 계산을 해 봐요.”
“육 칠이 사십이.”
그는 구구단을 외어 보았다.
그러니 여섯 가마라는 것이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참으로 엄청난 수량이었다.
“말도 말아요. 금산 인삼시장에서 씨를 있는 대로 다 사 왔고 더 사겠다고 하자 금방 입소문이 펴져서 전국의 인삼씨가 전부 금산으로 몰려 왔어요. 나오는 족족 다 샀지요.
“아주 씨를 말렸군요.”
“그랬지요.”
그런데 그 씨알의 수량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한 알 한 알 다 심은 것이다. 한 알이 아니고 두 알 세 알이라 허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일 것인가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것도 평지가 아니고 발이 미끄러지는 비탈에다 심은 것이다. 산비탈 잣나무 숲 속 응달진 곳에 낟알을 하나하나 꽂은 것이다. 20년, 30년 넘은 잣나무 밑에는 다행히 다른 나무나 풀이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그늘이 져서 그렇다. 그늘진 곳에 심어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삼 말고는. 인삼도 물론 명맥만 유지하는 것이다. 지나다가 검은 차광막으로 덮어 씌운 인삼밭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약이 되나보다. 산에 재배하니 산삼이다. 일반적으로 산양삼이라고 하고 장뇌삼이라고도 하는데 잣나무 숲 속 그늘에서 자라니 사실 산삼이다. 민병제 씨 얘기가 아니고 약재상에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여기 입지와 과정을 잘 알고 얘기하는 것이다. 원래 산삼이란 산 속에 인삼씨가 바람에 날려서 나든가 새나 다른 동물에 의해서 옮겨진 자연산을 말한다. 질골 잣나무 그늘에서 10년을 자란 민병제 표 산삼인 것이다.
민씨는 하나의 심마니나 농군으로 삶을 펼치고 있지 않았다. 용산면 부상리 질골 주민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노동요 ‘질골 막장소리’를 발굴하고 재현해 2011년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개인연기상과, 단체 은상을 수상하였다. 2008년에는 난계민속풍물연합회, 2012년에는 영동군 전통민속문화예술후원회를 구성해 발족시키었다.
그리고 지난 5월 26일 영동군민의 날에는 영동체육관에서 올해 자랑스런 군민대상 문화체육부문을 수상했다. 질골막장소리 보존 재현이 그 공적이다.
부상리에 위치한 부상 형석광산에는 형석(螢石) 채굴하던 옛날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고 그 막장에서 불리던 노동요가 주민들의 구전에 의해 발굴되어 재현되고 있다. 질골(부상리 가곡리 금곡리 3개 마을)막장소리는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 간에 작업의 능률을 높이고 사고의 위험을 줄이며 상호간의 화합과 신명 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동과 함께 불리는 전국 최초의 광산 노동요이다.
쌍맹이질소리 목도질소리 꽃반굿 등으로 전개되는데 질골 형석광산에서는 정월대보름을 비롯하여 월별 시기에 국태민안 안가태평 부귀영화 무사고를 염원하는 고사를 드린다. 축언고사를 질골에서는 꽃반굿이라고 한다. 짧은 꽃반굿 긴 꽃반굿의 장단은 세마치(자진모리)로 시작을 알리는 상쇠의 머리 장단으로 연주되다가 맺음 장단 신호에 따라 소리꾼의 사설 2장단 후 세마치 2장단을 주고 받으며 진행된다. 고실 고실은 고사리로다 사바하니 고사로다 / 산지조종은 곤룡산 수지 조종은 황해수…
영동 질골 전통민속보존회 민병제 회장은 막장소리의 리더인 상쇠 선소리꾼이다.

용산 부상리 민병제 씨가 질골 뒷산 잣나무 숲 30여 정보에 인삼씨 여섯 가마를 심은 지 10년이 지났다. 구경하기도 힘든 비탈 그늘진 곳에 한 알 한 알 심은 공이 얼마이고 품이 얼마인가.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민병제 씨는 그 인삼밭 위 형석 광산의 막장소리 보존회장으로 5월 26일 영동군민의 날에 군민대상을 받았다. 옆은 4륜구동차를 몰고 높은 골짜기까지 같이 간 아랫마을 내동의 박우양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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