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1 월간 제744호>
[4-H인의 필독서] 칼 오너리 ‘느린 것이 아름답다’
인생을 좀 더디게 사는 것도 괜찮다

밀려드는 방송 원고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잃고 지내는 요즘이다. 어떤 날은 내가 써야 할 원고와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밤중에 어느 고개에서 만난 도깨비와 씨름을 하듯, 밀려드는 원고 쓰는 일에 죽자사자 매달려 있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등장하는 시간도둑들이 내 시간을 통째로 도둑질해 간 것처럼 시간에 쫓긴다.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소개할 책은 ‘느린 것이 아름답다’(칼 오너리 지음, 박웅희 옮김, 대산출판사 펴냄)이다.
이 책의 결론은 느리게 살 때 만족스럽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거다. 또한 이 책은 우리가 어떤 것을 기다리는 법과 그것이 찾아왔을 때 즐기는 법을 잊어버렸다고 경고하고 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빨리빨리 인간’이 되어 버렸고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며 ‘슬로 운동’에 대해 말문을 열고 있다.
어느 날 저자는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렀다. 간신히 탑승구에 다다라 긴 줄의 맨 뒤에 서서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을 견디지 못해 신문을 펼쳐 읽는다. 그러다 신문을 접고 생각에 잠겼다.
“언제부터 내 삶이 한 시간 안에 더욱더 많은 것을 채워 넣는 속도 훈련장이 된 것일까. 스톱워치를 든 스쿠루지처럼 여기서 1분, 저기서 몇 초 하는 식으로 시간을 마지막 한 조각까지 아끼려고 발버둥친다.”
그 후 저자는 ‘시간병’에 걸린 사람들의 속도를 늦춰 줄 책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전세계 슬로 운동의 출발점이 된 이탈리아의 슬로 푸드를 출발점으로 해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을 돌며 슬로 시티, 슬로 스쿨, 슬로 잡, 슬로 음악, 슬로 운동, 슬로 의학 등을 취재했으며, 르포와 인터뷰, 자신의 체험기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느린 것이 아름답다’라는 것은 문명사회에 대한 과격한 선전포고가 아니라 세계인의 삶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일상적 슬로건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열차에서 무심히 창밖을 보고 있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인가? 모두들 신문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MP3를 듣거나, 노트북 작업을 하거나, 휴대전화에 대고 수다를 떠느라 여념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는 여유를 잃었다. 아니, 문명의 이기에게 여유를 빼앗기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1935년 발표한 에세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많은 사람들이 늘어난 자유 시간을 자기 향상에 쓸 것이라고 예언했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거나 낚시, 정원 가꾸기나 그림그리기 같은 점잖고 관조적인 취미를 즐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러셀은 사람들이 “좀더 친절해지고, 서로 덜 괴롭히고, 타인을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여가가 많으니 인생이 달콤하고 느리고 품위 있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도 일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한다. 이런 까닭에 저자는 ‘패스트’보다는 ‘슬로’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슬로’의 삶은 어떤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슬로가 항상 느린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저자는 ‘슬로 철학’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빠르게 하는 것이 마땅할 때는 빠르게 하고, 느리게 해야 할 때는 느리게 하라. 음악가들이 말하는 ‘템포 기우스토’, 곧 적당한 속도로 사는 삶을 추구하라.”
또한 저자는 어린이들 역시 느리게 키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단기간에 뛰어난 능력을 심어주려는 부모의 조급증이 오히려 어린이들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의 인지 능력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 무리하게 조기 교육을 시키면 사회성은 물론 학습 효과까지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어린이를 위해 실천하는 슬로 운동으로 TV 끄기를 권하고 있다. TV를 안보면 가족 모두에게 갑자기 많은 시간이 생긴다. 이 시간은 삶의 여유를 갖게 하고 보다 의미 있는 여가 시간을 보내게 한다는 것이다.
자, 이제 바쁜 발걸음, 뒤죽박죽인 머릿속을 멈춰 세우자. 그리고 무엇을 위해 서두르는지 생각해 보자. 아끼고 아낀 시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무조건 시간을 절약한다고 과연 우리 삶이 풍성해지는지 돌아볼 일이다.
느리게 살기라는 것은 실천이 쉽지 않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급한,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눈을 감은 후 깊이 심호흡을 하며, 단 1분이라도 나 자신을 위한 온전한 휴식의 시간을 가져보자. 그리고 ‘느린 것이 아름답다’를 펼쳐서 자연의 시간에 따라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빨리빨리’를 버리지 못한 나 자신에게 속삭여보자.
“천천히! 느리게!”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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