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1 월간 제744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우산을 쓰면 몰매를 맞는다?
개화기 때 있었던 일이다. 오랫동안 가물었다가 비가 내린 어느 날이었다. 우리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하는 미국인 선교사는 우산을 쓰고 거리로 나섰다. 장대같이 굵은 비는 마른 땅을 흠뻑 적셔 주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걷던 미국인 선교사는 파랗게 질려 걸음을 멈추었다. 어떤 남자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자기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선교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더니 벼락처럼 고함을 질렀다.
“당신이 사람이야? 하늘이 가뭄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오랜만에 귀한 비를 내려주시는데, 하늘이 주는 복을 가리고 있어? 당신 같은 인간은 정말 혼 좀 나야 해!”
고함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선교사가 쓴 우산을 보더니 노기 띤 얼굴로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하늘이 주는 복을 일부러 가려?”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몹쓸 짓을 하다니. 천벌을 받고 싶어?”
“아무리 외국인이라도 너무하잖아.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어?”
사람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선교사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이쿠! 왜들 이러십니까? 때, 때리지 말고 말로 하세요.”
선교사는 서투른 조선말로 떠듬떠듬 말했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선교사를 에워싸고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선교사는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썼다는 죄로 몰매를 맞은 것이다.
이튿날 이 일은 ‘독립신문’에 실렸다. 외국인들이 우산을 쓰고 거리로 나왔다가 봉변을 당한 경우는 이때뿐이 아니었다.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났고 ‘독립신문’에 자주 기사가 실렸다. 그 뒤부터 선교사들은 한동안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외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일로 사람들의 분노를 사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다.
당시 사람들은 오랜 가뭄 끝에 하늘에서 내린 비는 신성하게 여겼다. 그 비를 우산으로 받는 것은 하늘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하늘이 내려주는 복을 막는다고 생각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농사를 지어 왔기 때문에 하늘의 뜻에 거스르지 않고 순종하며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비가 와도 하늘이 주는 복으로 알고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비를 몽땅 맞은 것은 아니었다. 옛날 사람들은 도롱이를 입거나 삿갓을 써서 최소한으로 비를 피하며 농사일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우산이 들어온 것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올 무렵이다. 그렇다고 옛날에 우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산이 하늘을 받친다고 하여 중국 천자의 상징으로 알고 일부러 쓰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우산을 쓰게 된 것은 순전히 여학생들 덕분이다. ‘쓰개치마’는 옛날부터 여성들이 외출할 때 머리에 쓰는 치마다. 1911년 배화학당에서는 여학생들에게 쓰개치마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많은 여학생들이 얼굴을 드러낸 채 다닐 수 없다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에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에게 검정 우산을 나누어 주어, 얼굴을 가리고 다닐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우산은 다른 여학생들은 물론 부녀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얼굴을 가리는 역할에다가 비가 올 때는 우산, 햇볕이 따가울 때는 양산 역할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산이 크게 유행해 누구나 쓰고 다니게 되었다.〈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30년 동안 우산을 쓰고 다닌 영국 신사가 있었다면서요?”

우산은 본래 햇볕을 가리는 데 쓰이는 양산에서 비롯되었다. 우산을 뜻하는 ‘엄브렐러(umbrella)’라는 말이 ‘그늘’을 의미하는 라틴어 ‘움브라’에서 왔다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최초로 우산을 발명한 것은 중국 아닌 고대 이집트로 알려져 있다. 우산은 왕족이나 귀족들만 사용했는데, 높은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이용되었다.
우산이 비를 피하기 위해 처음 사용된 것은 18세기경부터였다. 영국의 이름난 여행가 핸웨이가 페르시아에 갔다가 중국에서 전래된 우산을 처음 본 것이다. 그래서 이 우산을 영국으로 가져와 우산을 쓴 채 런던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자 우산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핸웨이를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래도 핸웨이는 아랑곳없이 해가 뜨나 비가 오나 꼭 우산을 쓰고 다녔다.
마부들은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사람들은 비가 오면 꼭 마차를 부르는데, 우산이 널리 보급된다면 자신의 생계에 큰 위협이 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비 오는 날 핸웨이를 길에서 발견하면 일부러 마차를 그에게 접근해 흙탕물을 튀겼다고 한다.
핸웨이는 30년 동안 꿋꿋하게 우산을 쓰고 다녔다. 그 뒤에 사람들은 비 오는 날 우산을 사는 것이 마차를 부르는 것보다 더 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산은 19세기 중엽에 와서 신사가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이 크게 유행할 만큼 널리 보급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박쥐 모양의 우산을 만든 것도 핸웨이다. 영국에서는 우산을 핸웨이의 이름을 따서 ‘핸웨이즈’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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