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1 월간 제744호>
[시네마&비디오] 건축학개론
과거, 오래될수록 아름다운 것

영화‘건축학개론’은 관객들에게 기억의 가치, 특히 ‘첫사랑’이라는 기억의 가치를 알려준다.
이 영화는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건축학과 첫사랑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감독이 건축학과를 나와서 건축학개론을 첫사랑과 연결시킨 것일까? 아니면 1990년대 건축학과가 가장 인기 있는 학과였기 때문일까? 영화는 첫사랑의 시작과 끝을 건축학개론 수업의 시작과 끝으로 일치시켰다. 바로 한 학기동안 일어난 짧은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어서 이런 일치를 만들어 내려한 것일까? 건축학개론 첫 수업 날 교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건축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수업을 시작한다.
1990년대 스무 살 건축학과생 승민은 음대생 서연을 ‘건축학개론’ 시간에 만난다. 둘은 정릉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과제도 같이 하고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친해진다. 친구와 연인 사이의 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게 된다.
15년 후 갑자기 나타난 서연은 승민에게 제주도에 집을 설계해 달라고 부탁한다. 두 사람은 15년 전 일들을 회상하며 서로가 첫사랑의 상대였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첫사랑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기억 속에 꿈틀대던 사랑이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그들은 멈춰 선다. 그리고 영원히 기억 속에 봉인 시킨 채 원래의 삶으로 돌아간다.
오래될수록 건축물의 가치는 높아진다. 이 말이 옳을까? 낡은 아파트 옆에 신축 아파트가 들어오면 낡은 아파트의 가격은 처참하게 곤두박질하는 것을 날마다 보면서 이런 말은 믿을 수가 없다. 오래될수록 건축물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말은 옳지 않다. 적어도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말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초가집을 쓸어버리고 콘크리트 집을 짓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그냥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에 관한 것일 뿐이다. 만약 그 낡은 건물에 사랑하는 마음과 기억이 묻어 있다고 해도 그 가치가 그렇게 쉽게 떨어질까? 이것은 서연이 제주도에 아버지와 함께 살려고 하는 집의 가치다. 처음에는 쓸어 버리고 모두 바꾸려 하지만 그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은 원래의 건축물 위에 현대적인 색채를 더하는 것이었다. 건축에서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처럼 묻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첫사랑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만 가득한 삶이란 너무 차갑다. 정이 들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기억의 가치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것이 현실에 있는 차가운 것들을 따뜻하게 바꿔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첫사랑은 버려야할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야 한다.
〈손광수 /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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